이 비유(譬喩)와 같이
구경사
0
201
04.12 08:03
이 비유(譬喩)와 같이 사람들은 눈으로 보는 물건(색 = 色)과, 귀로 듣는 소리(성 = 聲)와, 코로 맡는 냄새(향 = 香)와, 혓바닥으로 아는 맛(미 = 味)과, 몸으로 부딪치는 감촉(촉 = 觸)과, 뜻으로 생각하는 물건(법 = 法)때문에 서로 싸우다가 그 가운데 유혹의 힘이 가장 강한 편에 끌려가서 그 지배를 받게 된다. 그러나 만일 이 여섯 마리의 동물(動物)들을 각각 단단한 줄에 잡아매고 다시 튼튼한 나무 기둥에 잡아매어 얽어놓으면, 처음에는 각각 제집으로 들어가려고 하다가 필경에는 힘이 다하여 기진먝진하게 되고 그 기둥옆에 드러누울 것이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도 만일 육근(六根)을 단속하여 도(道)를 닦는 데 치우치면 보는 물건과, 듣는소리와, 맏는 냄새와, 아는맛과, 부딪치는 감촉 등의 오욕(五欲)에 끌려가지 아니할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진실한 것은 착한 행실이니 이것만 잘 지켜도 현재와 미래의 이익(利益)을 얻을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중생(衆生)은 욕심(慾心)의 불길을 태우는 대만 눈이 어두워 화려한 이름을 구하지만 그것은 향을 피울 때 향나무는 맑은 향냄새를 피우지만 제 몸이 타서 녹아 없어지는 것과 같다. 부질없이 이름을 구하고 명예를 탐해서 도를 지킬줄 모르면 몸은 위대하고 마음은 뉘우쳐서 제 살을 물어뜯고 싶으리라. 재물과 색을 탐하는 것은 마치 어린아이들이 칼날에 묻어 있는 꿀을 빠는 것과 같아서 단것을 맛보고 있는 동안에 입안이 비어지는 환란(患亂)을 만나게 된다. 탐하기를 싫어할 줄 모르는 사람은 횃불을 들고 바람을 거슬러가는 것과 같아서 손을 데이고 몸을 태울 것임이 틀림없다. 탐진치(貪嗔痴)의 삼독(三毒)이 가득 차 있는 그 마음을 믿어서는 아니된다. 마음이 하고 싶은 대로 하여서는 아니 된다. 마음을 눌러서 빠져들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도(道)를 생각하는 사람은 사물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아니된다. 마른 풀을 등에 짊어진 채 사방으로부터 풀어 오는 들불을 보고 피하는 것과 같이 도를 구하는 자는 반드시 이 욕심부터 멀리해야 한다. 아름다운 색을 보고 마음이 끌려감을 두려워해서 눈알을 빼어버리려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이다. 마음이 주가 되기 때문에 사사로운 마음을 끊으면 그 마음에 따라가는 물욕도 멈춘다. 도를 구하여 나아가는 것도 괴롭지만 도를 구할 마음이 없는 것은 한층 더 괴로운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나서(생 = 生), 늙고(노 = 老), 병들고(병 = 病), 죽는다(사 = 死) 그래서 그 고통은 제한이 없다. 도를 구해가는 것은 마치 소가 무거운 짐을 지고 깊은 진흙밭을 뚫고 갈 때에 고달퍼도 곁눈을 팔지 않고 나아가다 진흙밭을 다 벗어나고서야 한번 숨을 돌리늩 것과 같다. 욕심의 진흙밭은 그보다도 깊다. 그러나 마음을 바로 하여 도를 구해 가면 진흙밭을 벗어나서 고통을 잊어버리게 되리라. 도를 구해 가는 사람은 거만을 버리지 않으면 아니된다. 어떠한 금전(金錢) 재보(財寶)와 같은 장식이라도 덕(德)의 장식에는 미치지 못한다. 몸을 건강히 하고 한 집안을 번영시키며 백성을 편하게 하는 데는 먼저 마음을 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음을 조정하여 도를 즐겨하는 시간이 있으면 덕은 스스로 높아지는것이다. 보석(寶石)과 같은 값진 구슬은 땅에서 나고, 덕(德)은 선(善)으로부터 자라나고 지혜(智慧)는 고요하고 깨끗한 마음으로부터 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