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의 욕구(欲求)
구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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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 18:12
ㅁ. 생(生)의 욕구(欲求)
인간(人間)이 살아 가자면 생활고(生活苦)와 인간고(人間苦)는 여러 가지의 이유가 있어서 일어난 것이라 하겠지만, 그 깊은 근본을 캐어 보면, 전부가 생(生)의 욕구(欲求)인 모순(矛盾 )에서 일어난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실제로 생각해 보면 사람의 삶처럼 불가사의(不可思議)한 것이 없다. 사람이 보다 잘 살겠다고 기를 쓰는 것은 살기 위한 욕구에 불과한 것인데 필경에는 죽음(사 = 死)이란 것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알다가도 모를 일이요, 알려고 하여도 알수가 없는 일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자유(自由)의 욕구라고 하겠는데, 누구나 구속(拘束)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따라서 인생(人生)의 자각(自覺)이란 것은 이 생(生)의 모순과 결함에 대하여 미혹(迷惑)을 풀고 해결하는 것을 뜻한다. 생(生)이란 것은 참으로 인간의 수수께끼다. 이 수수께끼는 생에 대한 이 모순 당착의 수수께끼를 풀기 전에는 풀려지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생의 욕구와 구속의 충돌을 면치 못하고 있으니, 고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아러한 충돌은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바라서는 안 될 것을 바라고, 그 바라는 것이 제대로 성취(成就)되지 않는 데서 오는 것이다. "아함경(阿含弳),,에 말씀하시기를, "인간이 살고 있다는 것은 요약하여 말하면 구하는 데 불과 하다. 그러나 구함에는 옳게 바르게 구하는 것과 잘못 구하는 것이 있으니, 잘못 구한다는 것은 자기가 늙어가면서 늙지 않기를 구하고, 병들어 가면서 병들지 않기를 구하고, 죽어가면서 죽지 않기를 구하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욕구(慾求)가 근본(根本)이 되어서 제 욕심대로 되기를 바라고 있다.그러나 현실은 우리의 욕심과는 정반대로 틀려지는 데서 문제와 고뇌가 일어나게 된다. 인생사(人生事)라는 것은 놀음판에서 주사위를 던지는 것과 같아서, 좋은 것이 나올는지 나쁜 것이 나올는지 모르는 것이다. 던져서 좋은 것이 나오면 좋지마는 나쁜것이 나오면 고민하게 된다. 왜냐 하면 나쁜 것이 나오면 노름에 지고 돈을 잃게 되는 까닭이다. 그러니까. 사람은 누구나 늙고 병들어 죽을 몸을 가지고 있으면서, 언제든지 건강하기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병이들면 괴로워한다. 생(生)은 사(死)의 시초(始初)이니.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노(老), 병(病), 사(死)를 면치 못함을 각오해야 되는데, 죽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병(病)에 걸리든지 하면 혹 죽지나 않을까 하고 겁내고 근심하는 것이다. 병원(病院)을 가면 병원마다 환자가 만원이다. 이것은 다 병들어 앓는 사람이 많다는 증거인데 자기 가정 자기 몸에만 병이 생기지 않기를 구하기 때문에 병이 생기면 질색을 하는 것이다. 인간 생활(人間生活)의 문제는 이와 같아서 사람에 따라서 천차 만별로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바라서는 안 될 것을 바라고 모든 일이 자기에게만 편리하고 순조롭게 풀리기만 바라기 때문에, 사실이 기대와 다르게 곧 모순을 느끼고 괴로와 한다. 욕구(慾求)라는 것이 우리 인간의 눈을 가려서 장님을 만들어 놓고 제게 좋도록만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인과(因果)라고 하는 엄연한 사실은 그러한 개인의 욕망(慾望)에 좌우되지 않기 때문에 위생(衛生)에 부주의(不注意)하면 병이 생기게 마련이오, 돈을 아껴서 쓰지 아니하면 빈궁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바라지 않던 병자(病者)도 나고 생각하지 않던 불헁이 굴러와서 사실과 기대에 어긋나서 모순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이렇게 사실과 기대가 어긋나서 모순을 느끼고 괴로울 때에 우리 인간은 어떠한 해결을 취할 것인가? 눈을 감고 한번 생각해 볼 문제라고 하겠다.
인간(人間)이 살아 가자면 생활고(生活苦)와 인간고(人間苦)는 여러 가지의 이유가 있어서 일어난 것이라 하겠지만, 그 깊은 근본을 캐어 보면, 전부가 생(生)의 욕구(欲求)인 모순(矛盾 )에서 일어난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실제로 생각해 보면 사람의 삶처럼 불가사의(不可思議)한 것이 없다. 사람이 보다 잘 살겠다고 기를 쓰는 것은 살기 위한 욕구에 불과한 것인데 필경에는 죽음(사 = 死)이란 것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알다가도 모를 일이요, 알려고 하여도 알수가 없는 일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자유(自由)의 욕구라고 하겠는데, 누구나 구속(拘束)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따라서 인생(人生)의 자각(自覺)이란 것은 이 생(生)의 모순과 결함에 대하여 미혹(迷惑)을 풀고 해결하는 것을 뜻한다. 생(生)이란 것은 참으로 인간의 수수께끼다. 이 수수께끼는 생에 대한 이 모순 당착의 수수께끼를 풀기 전에는 풀려지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생의 욕구와 구속의 충돌을 면치 못하고 있으니, 고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아러한 충돌은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바라서는 안 될 것을 바라고, 그 바라는 것이 제대로 성취(成就)되지 않는 데서 오는 것이다. "아함경(阿含弳),,에 말씀하시기를, "인간이 살고 있다는 것은 요약하여 말하면 구하는 데 불과 하다. 그러나 구함에는 옳게 바르게 구하는 것과 잘못 구하는 것이 있으니, 잘못 구한다는 것은 자기가 늙어가면서 늙지 않기를 구하고, 병들어 가면서 병들지 않기를 구하고, 죽어가면서 죽지 않기를 구하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욕구(慾求)가 근본(根本)이 되어서 제 욕심대로 되기를 바라고 있다.그러나 현실은 우리의 욕심과는 정반대로 틀려지는 데서 문제와 고뇌가 일어나게 된다. 인생사(人生事)라는 것은 놀음판에서 주사위를 던지는 것과 같아서, 좋은 것이 나올는지 나쁜 것이 나올는지 모르는 것이다. 던져서 좋은 것이 나오면 좋지마는 나쁜것이 나오면 고민하게 된다. 왜냐 하면 나쁜 것이 나오면 노름에 지고 돈을 잃게 되는 까닭이다. 그러니까. 사람은 누구나 늙고 병들어 죽을 몸을 가지고 있으면서, 언제든지 건강하기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병이들면 괴로워한다. 생(生)은 사(死)의 시초(始初)이니.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노(老), 병(病), 사(死)를 면치 못함을 각오해야 되는데, 죽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병(病)에 걸리든지 하면 혹 죽지나 않을까 하고 겁내고 근심하는 것이다. 병원(病院)을 가면 병원마다 환자가 만원이다. 이것은 다 병들어 앓는 사람이 많다는 증거인데 자기 가정 자기 몸에만 병이 생기지 않기를 구하기 때문에 병이 생기면 질색을 하는 것이다. 인간 생활(人間生活)의 문제는 이와 같아서 사람에 따라서 천차 만별로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바라서는 안 될 것을 바라고 모든 일이 자기에게만 편리하고 순조롭게 풀리기만 바라기 때문에, 사실이 기대와 다르게 곧 모순을 느끼고 괴로와 한다. 욕구(慾求)라는 것이 우리 인간의 눈을 가려서 장님을 만들어 놓고 제게 좋도록만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인과(因果)라고 하는 엄연한 사실은 그러한 개인의 욕망(慾望)에 좌우되지 않기 때문에 위생(衛生)에 부주의(不注意)하면 병이 생기게 마련이오, 돈을 아껴서 쓰지 아니하면 빈궁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바라지 않던 병자(病者)도 나고 생각하지 않던 불헁이 굴러와서 사실과 기대에 어긋나서 모순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이렇게 사실과 기대가 어긋나서 모순을 느끼고 괴로울 때에 우리 인간은 어떠한 해결을 취할 것인가? 눈을 감고 한번 생각해 볼 문제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