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행문
구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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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9 19:38
제5항(第五項) 관행문(觀行門)
일념삼천설(一念三千說)은 위(위 = 上)와 같으나 문졔는 이런 이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의 관계 즉 불계(佛界)의 구현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끝으로 관행문(觀行門)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앞에서 우리는 천태교학(天台敎學)에서는 원융삼제(圓融三諦)를 말하여 일체의 모든 법(法)이 다 원융삼제(圓融三 諦)로 존재(存在)하고 있다고 하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이 삼제(三諦)를 관찰(觀察)함에 공제(空諦)를 관(觀)하여서 견사혹(見思惑)을 끊고, 가제(假諦)를 관(覌)하여선 진사혹(塵沙惑)을 끊고 중도제(中道諦)를 관(觀)하여선 부명혹(無明惑)을 끊되 하나 하나 끊는 방법도 있지만 일심(一心)으로 한꺼번에 관(觀)하여 단번에 끊는 일심삼관(一心三觀)의 법(法)도 알아보았다. 그럼 이 삼천세간 (三千世間)은 어떻게 되는가? 삼천문(三千門)이 아무리 벌어저 그것이 있더라도 그것은 결코 원융삼제(圓融三諦)를 떠나서 존재(存在)하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이치상으로 볼 땐 삼천법(三千法)이 하나도 다를 것이 없어 중생(衆生)이니 부처이니 하는 차별을 세울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만일 원융삼제(圓融三諦) 중도(中道) 실상(實相)을 모르고 행(行)하면 온갖 혹(惑)을 일으키어 미계(迷界)를 못 면할 것이요 그러므로 일념삼천(一念三千)의 일념심(一念心)은 망심(妄心) 곧 사심(事心)이라고 한다. 만일 이런 실상(實相)을 여실히 알고 이것을 체득하여 그대로 행한다면 지금까지 지옥(地獄)을 생각하고 불계(佛界)를 생각하던 것은 다 망심(妄心)으로 인한 것이라 일체의 번뇌(煩惱)가 끊어져 법신(法身)의 몸을 얻고 반야(般若)의 광명(光明)이 법계(法界)를 채워 끝 없는 해탈(解脫)을 누닐 것이니 지옥(地獄)이니 부처니 그 무엇을 걱정하리요 그대로가 절대적인 세계에서의 부처가 아닌가. 본래 정해진 지옥이라 불(佛)이라 할 것도 없으니 일념삼천설(一念三千說)은 바로 이것을 일러주고 있는것이다. 생사(生死)도 열반(涅槃)도 어젯밤 꿈이 아닌가.
일념삼천설(一念三千說)은 위(위 = 上)와 같으나 문졔는 이런 이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의 관계 즉 불계(佛界)의 구현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끝으로 관행문(觀行門)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앞에서 우리는 천태교학(天台敎學)에서는 원융삼제(圓融三諦)를 말하여 일체의 모든 법(法)이 다 원융삼제(圓融三 諦)로 존재(存在)하고 있다고 하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이 삼제(三諦)를 관찰(觀察)함에 공제(空諦)를 관(觀)하여서 견사혹(見思惑)을 끊고, 가제(假諦)를 관(覌)하여선 진사혹(塵沙惑)을 끊고 중도제(中道諦)를 관(觀)하여선 부명혹(無明惑)을 끊되 하나 하나 끊는 방법도 있지만 일심(一心)으로 한꺼번에 관(觀)하여 단번에 끊는 일심삼관(一心三觀)의 법(法)도 알아보았다. 그럼 이 삼천세간 (三千世間)은 어떻게 되는가? 삼천문(三千門)이 아무리 벌어저 그것이 있더라도 그것은 결코 원융삼제(圓融三諦)를 떠나서 존재(存在)하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이치상으로 볼 땐 삼천법(三千法)이 하나도 다를 것이 없어 중생(衆生)이니 부처이니 하는 차별을 세울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만일 원융삼제(圓融三諦) 중도(中道) 실상(實相)을 모르고 행(行)하면 온갖 혹(惑)을 일으키어 미계(迷界)를 못 면할 것이요 그러므로 일념삼천(一念三千)의 일념심(一念心)은 망심(妄心) 곧 사심(事心)이라고 한다. 만일 이런 실상(實相)을 여실히 알고 이것을 체득하여 그대로 행한다면 지금까지 지옥(地獄)을 생각하고 불계(佛界)를 생각하던 것은 다 망심(妄心)으로 인한 것이라 일체의 번뇌(煩惱)가 끊어져 법신(法身)의 몸을 얻고 반야(般若)의 광명(光明)이 법계(法界)를 채워 끝 없는 해탈(解脫)을 누닐 것이니 지옥(地獄)이니 부처니 그 무엇을 걱정하리요 그대로가 절대적인 세계에서의 부처가 아닌가. 본래 정해진 지옥이라 불(佛)이라 할 것도 없으니 일념삼천설(一念三千說)은 바로 이것을 일러주고 있는것이다. 생사(生死)도 열반(涅槃)도 어젯밤 꿈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