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각(等覺)
구경사
0
238
03.18 10:06
6.등각(等覺)
등각(等覺)은 법운지(法雲地)의 다음 자리로 십일지(十一地)인데 등각(等覺)이라 함은 부처님의 정각(正覺)과 동등(同等)하다는 의미이다. 불타(佛陀)의 신통(神通)을 나투면서 항상 본경(本境)에 주하나 아직은 불타(佛陀)라 할 수는 없어서 부처님에 비하면 아래이고 보살(菩薩)이나 십지(十地)에 비하면 위인 것이다. 이 위(位)에 이르면 보살(菩薩)로서는 최후신(最後身)이기에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이라고도 하며 불위(佛位)에 가까웠다는 의미에서 인극(隣極)이라고도 한다.
7. 묘각(妙覺)
묘각(妙覺)은 지극히 묘(妙)한 각(覺)이라는 뜻이니 일체(一切)의 번뇌(煩惱)를 다 끊어 없애고 지혜(智慧)가 원만(圓滿)하여 스스로 깨닫고 또 남도 깨닫게 하는 모든 각행(覺行)이 원만(圓滿)하여 불가사의(不可思議)한 무상정각(無上正覺)의 불위(佛位)이다. 이상으로 흔히 대승(大乘)의 수행위계(修行位階)로 알려져 있는 52위설(五十二位說)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마치고 화엄경(華嚴經)의 제일 끝을 장식하는 입법계품(入法界品)에 있어서 선재동자(善財童子)가 문수보살(文殊菩薩)을 만나 초발심(初發心)하여 53선지식(五十三善知識)을 순방하는 것도 결국은 이 52위(五十二位)에 오름을 표현한 것이니 처음 문수보살(文殊菩薩)을 만남은 십신(十信)이라 하겠고 (1)덕운비구(德雲比丘)에서 (10)자행동녀(慈行童女)까지는 십주(十住)의 선지식(善知識)이며, (11)선견비구(善見比丘)에서 (20)변행외도(遍行外道)에 까지는 십행(十行)의 선지식(善知識), (21)육향장자(鬻香長者)에서 (30)안주신(安住神)까지는 십회향(十廻向)의 선지식(善知識), (31) 바선반여주야신(婆珊婆演晝夜神)에서 (40)가비라성(迦毘羅城)) 구바녀(瞿婆女)까지는 십지(十地)의 선지식(善知識), (41)마야부인(摩耶夫人)에서 (50)덕생동자(德生童子)와 유덕녀(有德女)까지는 십일지의 선지식(善智識), (51)미륵보살(彌勒菩薩), (52)문수보살(文殊菩薩), (53) 보현보살(普賢菩薩)까지는 묘각위(妙覺位)의 선지식(善知識)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52위가 꼭 어떤 수도(修道)의 차례를 말한다고는 할 수 없다는 점도 있다는 것은 위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어느 위가 되던지 그 실천행은 십바라밀(十波羅蜜)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성불(成佛)의 원(願)을 세웠다면 보살행(菩薩行)을 닦는다면 이상의 여러 위(位)과 자기를 비교하고 살펴보아 부족한 점을 찾으면서 열심히 수행(修行)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52위설(五十二位說)은 그대로 하나의 이론일 뿐 우리와의 별개의 것으로 남고 자신도 불보살(佛菩薩)의 생명(生命)과 광명(光明)에는 한 몸이 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등각(等覺)은 법운지(法雲地)의 다음 자리로 십일지(十一地)인데 등각(等覺)이라 함은 부처님의 정각(正覺)과 동등(同等)하다는 의미이다. 불타(佛陀)의 신통(神通)을 나투면서 항상 본경(本境)에 주하나 아직은 불타(佛陀)라 할 수는 없어서 부처님에 비하면 아래이고 보살(菩薩)이나 십지(十地)에 비하면 위인 것이다. 이 위(位)에 이르면 보살(菩薩)로서는 최후신(最後身)이기에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이라고도 하며 불위(佛位)에 가까웠다는 의미에서 인극(隣極)이라고도 한다.
7. 묘각(妙覺)
묘각(妙覺)은 지극히 묘(妙)한 각(覺)이라는 뜻이니 일체(一切)의 번뇌(煩惱)를 다 끊어 없애고 지혜(智慧)가 원만(圓滿)하여 스스로 깨닫고 또 남도 깨닫게 하는 모든 각행(覺行)이 원만(圓滿)하여 불가사의(不可思議)한 무상정각(無上正覺)의 불위(佛位)이다. 이상으로 흔히 대승(大乘)의 수행위계(修行位階)로 알려져 있는 52위설(五十二位說)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마치고 화엄경(華嚴經)의 제일 끝을 장식하는 입법계품(入法界品)에 있어서 선재동자(善財童子)가 문수보살(文殊菩薩)을 만나 초발심(初發心)하여 53선지식(五十三善知識)을 순방하는 것도 결국은 이 52위(五十二位)에 오름을 표현한 것이니 처음 문수보살(文殊菩薩)을 만남은 십신(十信)이라 하겠고 (1)덕운비구(德雲比丘)에서 (10)자행동녀(慈行童女)까지는 십주(十住)의 선지식(善知識)이며, (11)선견비구(善見比丘)에서 (20)변행외도(遍行外道)에 까지는 십행(十行)의 선지식(善知識), (21)육향장자(鬻香長者)에서 (30)안주신(安住神)까지는 십회향(十廻向)의 선지식(善知識), (31) 바선반여주야신(婆珊婆演晝夜神)에서 (40)가비라성(迦毘羅城)) 구바녀(瞿婆女)까지는 십지(十地)의 선지식(善知識), (41)마야부인(摩耶夫人)에서 (50)덕생동자(德生童子)와 유덕녀(有德女)까지는 십일지의 선지식(善智識), (51)미륵보살(彌勒菩薩), (52)문수보살(文殊菩薩), (53) 보현보살(普賢菩薩)까지는 묘각위(妙覺位)의 선지식(善知識)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52위가 꼭 어떤 수도(修道)의 차례를 말한다고는 할 수 없다는 점도 있다는 것은 위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어느 위가 되던지 그 실천행은 십바라밀(十波羅蜜)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성불(成佛)의 원(願)을 세웠다면 보살행(菩薩行)을 닦는다면 이상의 여러 위(位)과 자기를 비교하고 살펴보아 부족한 점을 찾으면서 열심히 수행(修行)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52위설(五十二位說)은 그대로 하나의 이론일 뿐 우리와의 별개의 것으로 남고 자신도 불보살(佛菩薩)의 생명(生命)과 광명(光明)에는 한 몸이 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