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관(涅槃觀)
구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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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2 10:25
열반관(涅槃觀)
소승불교시대(小乘佛敎時代)의 열반관(涅槃觀)은 후세(後世) 발달된 대승불교(大乘佛敎)에서와는 달리 상당히 원시적이었다. 열반(涅槃)이란 말은 그 원래의 뜻은 <불어서 끈다(취멸 = 吹滅)라 든지> 혹은 <불이 꺼진 상태>를 나타내는 정도의 말이었다. 그리고 이 말은 또한 인도(印度)의 재래의 사상가들인 외도학파(外道學派)들이 사상적(思想的)으로 받아들여 그들이 요가 또는 선정(禪定)등을 통하여 얻으려고 하였던 어떤 <마음의 안정 상태> 또는 무상정(無想定)을 나타내는 말로도 사용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얻으려고 하였든 열반(涅槃)이란 병病)이라던지 죽음이라던지 하는 고통이 남아있는 이상 요가나 선정(禪定)등을 통하여 얻을 수도 없는 것이려니와 설사 얻었다고 하여도 그것은 결코 진정한 열반(涅槃)일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불교에선 이 열반(涅槃)이란 말을 과연 어떻게 말하였는가. 이제 초기(初期) 경전(經典)에 의해 알아보면 <탐욕을 영원히 끊고 노여움을 영원히 끊어 어리석음을 영원히 끊고 일체의 모든 번뇌(煩惱)를 끊은 것, 이것을 일러 열반(涅槃)이라 한다.> (잡아함경 권18) <애욕(愛欲)은 능히 세상에 얽어매나니 애욕(愛欲)을 조복(調伏)하고 해탈(解脫)하고 애욕(愛欲)을 끊은것 이것을 일러 열반(涅槃)을 었었다고 한다.> (잡아함경 권 36)등으로 되어 있어 열반(涅槃)이란 곧 삼독심(三毒心)이라 불리는 탐욕(탐 = 貪) 노여움(진 = 瞋) 어리석음(치 = 痴)을 비롯한 모든 애욕(愛欲)과 내지 생사 (生死)에 대한 고통까지도 포함한 일체의 모든 번뇌(煩惱)를 다 끊고 다시는 아무런 번뇌(煩惱)도 없는 깨끗한 마음의 경지를 나타내는 말로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실로 번뇌(煩惱)가 남아 있다면 그것은 결코 열반 (涅槃)이라 할 수 없고 또한 그것은 어느 일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닌 영원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이제 열반이란 것에 대한 개념을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하여 다시 한번 다음과 같은 경 문구를 음미해 보자 <나의 생(生)은 이미 다 하였으며 범행(梵行)이 이미 섰고 할 일은 이미 다 마치어 뒷 세상에 태어남을 받지 않는다. 아생이진(我生已盡) 범행이입(梵行已立) 소작이변(所作已辨) 불수후유(不受後有)> 이 말은 아함경(阿含經) 곳곳에 나오는 열반(涅槃)을 증득(證得)한 자, 곧 아라한(阿羅漢)에 대한 말이거니와 이제 이 말을 풀이해 보면 즉 <열반(涅槃)을 증득(證得)한 아라한(阿羅漢)은 부자유스런 범부로서의 생(生)은 이 생(生)으로써 끝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청정(淸淨)한 이욕행(離欲行)이 서있고 모든 번뇌(煩惱)가 다하여 더 닦을 것이 없게 되어 할 일을 다 마치었으므로 다시는 뒷 세상의 생사(生死)를 받을 리가 없다.> 는 말이 되어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도 열반(涅槃)이란 일체(一切)의 번뇌 (煩惱)가 없고 생사(生死)를 멀리 떠난 청정(淸淨)하고도 영원(永遠)한 해탈(解脫)의 경지를 나타내는 말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유부 (有部)에서는 이런 열반(涅槃)을 유여의열반(有餘依涅槃)과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의 두가지로 나누어 보았다.(계속)
소승불교시대(小乘佛敎時代)의 열반관(涅槃觀)은 후세(後世) 발달된 대승불교(大乘佛敎)에서와는 달리 상당히 원시적이었다. 열반(涅槃)이란 말은 그 원래의 뜻은 <불어서 끈다(취멸 = 吹滅)라 든지> 혹은 <불이 꺼진 상태>를 나타내는 정도의 말이었다. 그리고 이 말은 또한 인도(印度)의 재래의 사상가들인 외도학파(外道學派)들이 사상적(思想的)으로 받아들여 그들이 요가 또는 선정(禪定)등을 통하여 얻으려고 하였던 어떤 <마음의 안정 상태> 또는 무상정(無想定)을 나타내는 말로도 사용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얻으려고 하였든 열반(涅槃)이란 병病)이라던지 죽음이라던지 하는 고통이 남아있는 이상 요가나 선정(禪定)등을 통하여 얻을 수도 없는 것이려니와 설사 얻었다고 하여도 그것은 결코 진정한 열반(涅槃)일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불교에선 이 열반(涅槃)이란 말을 과연 어떻게 말하였는가. 이제 초기(初期) 경전(經典)에 의해 알아보면 <탐욕을 영원히 끊고 노여움을 영원히 끊어 어리석음을 영원히 끊고 일체의 모든 번뇌(煩惱)를 끊은 것, 이것을 일러 열반(涅槃)이라 한다.> (잡아함경 권18) <애욕(愛欲)은 능히 세상에 얽어매나니 애욕(愛欲)을 조복(調伏)하고 해탈(解脫)하고 애욕(愛欲)을 끊은것 이것을 일러 열반(涅槃)을 었었다고 한다.> (잡아함경 권 36)등으로 되어 있어 열반(涅槃)이란 곧 삼독심(三毒心)이라 불리는 탐욕(탐 = 貪) 노여움(진 = 瞋) 어리석음(치 = 痴)을 비롯한 모든 애욕(愛欲)과 내지 생사 (生死)에 대한 고통까지도 포함한 일체의 모든 번뇌(煩惱)를 다 끊고 다시는 아무런 번뇌(煩惱)도 없는 깨끗한 마음의 경지를 나타내는 말로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실로 번뇌(煩惱)가 남아 있다면 그것은 결코 열반 (涅槃)이라 할 수 없고 또한 그것은 어느 일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닌 영원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이제 열반이란 것에 대한 개념을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하여 다시 한번 다음과 같은 경 문구를 음미해 보자 <나의 생(生)은 이미 다 하였으며 범행(梵行)이 이미 섰고 할 일은 이미 다 마치어 뒷 세상에 태어남을 받지 않는다. 아생이진(我生已盡) 범행이입(梵行已立) 소작이변(所作已辨) 불수후유(不受後有)> 이 말은 아함경(阿含經) 곳곳에 나오는 열반(涅槃)을 증득(證得)한 자, 곧 아라한(阿羅漢)에 대한 말이거니와 이제 이 말을 풀이해 보면 즉 <열반(涅槃)을 증득(證得)한 아라한(阿羅漢)은 부자유스런 범부로서의 생(生)은 이 생(生)으로써 끝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청정(淸淨)한 이욕행(離欲行)이 서있고 모든 번뇌(煩惱)가 다하여 더 닦을 것이 없게 되어 할 일을 다 마치었으므로 다시는 뒷 세상의 생사(生死)를 받을 리가 없다.> 는 말이 되어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도 열반(涅槃)이란 일체(一切)의 번뇌 (煩惱)가 없고 생사(生死)를 멀리 떠난 청정(淸淨)하고도 영원(永遠)한 해탈(解脫)의 경지를 나타내는 말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유부 (有部)에서는 이런 열반(涅槃)을 유여의열반(有餘依涅槃)과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의 두가지로 나누어 보았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