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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공(法空)

구경사 0 337
2. 법공(法空)
법공(法空)이라 함은 중생(衆生)을 구성하는 오온(五蘊)을 비롯한 객관적(客觀的) 현상계(現象界) 제법(諸法)이 모두 공(空)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 오온(五蘊)을 예로 들어 그 이유를 알아보면 경(經)에서는 <색(色)은 생멸법(生滅法)이요. 수(受), 상(想), 행(行), 식(識)도 생멸법(生滅法)이니 색(色)을 생멸법(生滅法)라 아는 것이 색(色)을 아는 것이요 수(受), 상(想), 행(行), 식(識)도 생멸법(生滅法)이라 아는 것이 각기 그를 아는 것이다.> (잡아함경 권 2) <색(色)이란 무상(無常)한 것이요. 그 무상(無常)한 것은 곧 고(苦)이다. 고(苦)란 것은 무아(無我)요 무아(無我)란 것은 공(空)이며 공(空)이 무아(無我)이므로 저것도 공(空)이니 이와 같은 것은 지자(智者)의 관(觀)하는 바이다. 수(受), 상(想), 행(行), 식(識)도 또한 무상(無常)하고 고(苦)이며 공(空)이요 무아(無我)이다. 그 실지로 공(空)이란 것도 무아(無我)요 공(空)이니 이와 같은 것은 지자(智者)의 배울 바이다.> (증일아함경 권 35) 등에 나와 있다. 이렇게 보면 제법(諸法)이 공(空)한 이유도 결국은  중생이 공(空)하다는 것과 같다. 즉 그것은
1. 인연(因緣)으로 말미암아 생멸(生滅)하는 것이다.
2. 시간적(時間的)으론 항상됨이 없고 무상(無常)하다.
3. 공간적(空間的)으론 어떤 고정된 실체가 없기에 무아(無我)이며
4. 결국은 공(空)할 수 밖에는 없다.
5. 그렇다고 하여 공(空)이란 것이 생멸법(生滅法) 무상(無常) 무아(無我)를 떠나서 따로 존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니 생멸(生滅)하는 무상(無常) 무아(無我)의 것이 그대로 공(空)이다.
6. 그러므로 우리가 무상(無常)한 것에 대하여 느끼는 주관적인 괴로움 <苦>이란 것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라는 것이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자연 그대로의 법칙일 뿐이라서 어느 누구에 의해 변경될 수도 새로 생길 수도 또 없어질 수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온(五蘊)만이 그런 것일까. 오온(五蘊)이 공(空)이라면 십이처(十二處)도 십팔계(十八界)도 나아가서는 일체 제법(諸法)도 세간(世間)도 모두 그래야 한다. 만일 이것이 어느 일부분에는 들어맞고 또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맞지 않는다면 <제법(諸法)은 모두 공(空)하다>는 말은 이미 보편적인 진리(眞理)로서는 가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멸(生滅)하는 법(法)이라면 그것은 이미 공(空)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경(經)에는 또한 다음과 같이 그 모든 것이 공(空)하다는 이치를 밝히고 있다. < 어떤 것을 제일최공(第一最空)의 법(法)이라 하는가. 저 안식(眼識)이 일어날 때 일어나되 그 오는 곳을 보지 못하며 멸할 때에 멸하되 멸하는 곳을 보지 못하니 오직 가호법(假號法) 인연법(因緣法)이니라 어떤것이 가호(假號) 인연법(因緣法)인가 이른 바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나면 저것이 나나니 무명(無明)을 연(緣)하여 행(行)이 있고 . . . .  생(生)을 연(緣)하여 노사(老死)가 있고 노사(老死)로 연(緣)하여 우비고뇌(憂悲苦惱)가 있어 가히 측량할 수 없나니 이와 같이 고음(苦陰)은 이런 인연(因緣)으로 이루워지나니라.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滅)하면 저것이 멸(滅)한다는 것이니라.(증일아함경 권 30) <이른 바 대공법경(大空法經)을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해 봅시다. 어떤 것을 대공법경(大空法經)이라 하는가, 소위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나니 무명(無明)을 연(緣)하여 행(行)이 있고 행(行)을 연(緣)하여 식(識)이 있으며 내지 순전한 대고취(大苦聚)가 모이느니라. . . . 비구(比丘)여 무명     
(無明)이 욕(欲)을 여의변 명(明)이 나고 무명(無明)이 멸(滅)하면 행(行)이 멸(滅)하고 내지 순전한 대고취(大苦聚)가 멸(滅)하느니라. 이것이 대공법경(大空法經)이라 이름 하느니라.(잡아함경 권 20) 세존(世尊)이시여 세간(世間). 세간(世間)이라 하니 무슨 뜻에서 세갼(世間)이라 하시나이까. 비구(比丘)여,  파괴되기 때문에 세간(世間)이라 하느니라.(상응부경 권 4) 이것으로 보면 결국 모든 것은 세간(世間)까지도 포함하여 그것은 나(생 =生)고 멸(滅
하되 어떤 고정된 실체가 본래 있어서 나는 것이 아니요 멸(滅)하는  것도 아니다. 즉 본래 좇아 나는 곳이 없고 본래 좇아 가는 곳이 없이 인연(因緣)의 화합으로 나고 인여(因緣)의 이산(離散)으로 멸(滅)하는 것이니 역시 무상(無常) 무아(無我)라 자연히 공(空)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연기법(緣起法)을 거짓 이름하여 부른다는 뜻에서 가호법(假號法)이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다만 물질적인 것 뿐만 아니라 앞에서도 나온 것 처럼 정신적인 것도 마찬<가지이다. <촉(觸)을 연(緣)하여 생기는 수(受) 혹은 즐겁고(락수 = 樂受) 혹은 괴롭고(고수 = 苦受) 혹은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는 것(비고비락수(非苦非樂受) 즉 사수(捨受)그것도 또 파괴되느니라.> (상응부경 권4) 라고도 한 것처럼 즐거움도 괴로움도 무상(無常) 무아(無我)라 공(空)인 것이다. 그러기에 그것은 생길 수도 없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상으로 우리는 주관(主觀)도 객관(客觀)도 모두 공(空)임을 알았다. 그러나 다시 한번 말하건데 아공설(我空說)이고 법공설(法空說)이고 간에 현재 존재하고 있는 오온가합(五蘊假合)의 나(아 = 我)라던지 객관적(客觀的)인 인연(因緣)으로 난 사물을 단순히 없다고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기(緣起)는 즉 유(有)(인연 화합으로 존재)인 동시 중도(中道)인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공(空)이라 하였을 땐 우리는 모든 부처님의 말씀이 그렇듯이 모든 것은 인연(因緣)으로 생기(生起)하는 것이기에 어떤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다는 것을 천명하여 우리가 그릇된 견해로써 모든 것엔 상재불멸(常在不滅)하는 어떤 실체가 있는 양 생각하여 가아(假我) 가법(假法)에 대해 실아실법(實我實法)인 것처럼 고집, 그에 따른 집착으로 온갖 망념(妄念)을 내여 결국 고해(苦海)를 지어 내는 것을 막아 그런 것들로 부터 망집(妄執)의 중생(衆生)을 해탈(解脫)케 하는데 그 근본적인 뜻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만일 고(苦)가 실체가 있다면 어찌 고(苦)를 없앨 수 있을 것이며 중생(衆生)이 실체가 있다면 어찌 중생(衆生)을 떠나 해탈(解脫)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기에 부처님께선 <이같이 공(空)의 정(定)을 닦으면 진실에 계합하여 전도되지 않느니라. 아난(阿難)아 이 조촐하고 수승한 공정(空定)에 주住)하기를 배울지니라,> (중부경 권121)  <이 중생류(衆生類)는 (모든 것을 공(空)으로 관찰(觀察)하는 삼매(三昧)인) 공삼매(空三昧)를 얻지 못하므로 말미암아 생사(生死)에 유랑하느니라. 제법(諸法)을 관찰(觀察)하면 공삼매(空三昧)를 얻고 공삼매(空三昧)를 얻으면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을 이루느니라.(증일아함경 권 40)등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아무튼 우리가 그다지도 싫어하는 고(苦), 그것도 실은 인연소생(因緣所生)이라. 무상(無常)하고 무아(無我)이기에 공(空)이라 우리는 그 인연(因緣)을 없애 그를 영원(永遠)히 떠날 수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볼 때 혹간 공(空) 사상(思想)은 대승불교(大乘佛敎)의 시대에 주로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학설(學說)에 의하여 법공설(法空說)은 있었느니라 하는 것은 잘못된 견해이며 이렇게 공(空) 사상(思想)은 알고 보면 근본불교(根本佛敎)로 부터 대승불교(大乘佛敎)까지 일관된 공통적인 기본 사상인 것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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