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설(世界說)
구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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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8 09:06
세계설(世界說)
앞의 제법론(諸法論)은 우리가 사유(思惟) 관찰(觀察)의 대상으로 하는 일체 제법(諸法)을 그 성질에 따라 분류 정리한 것이다. 그러면 그러한 우리가 생사윤회(生死輪廻)를 거듭하며 살고있는 세계(世界)는 어떤한가, 이 세계설(世界說)은 바로 이러한 중생(衆生)의 세계를 계층별로 나누어 정리해 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또한 이 세계설(世界說)은 어떤 의미에선 중생세간(衆生世間)에 대한 분류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제법론(諸法論)이나 세계설(世界說)이나 사람을 중심으로 한 점에 있었서는 공통이다. 그럼 우리는 이제 이 <우리가 중생으로서 살고 있는 세계> 즉 <생사(生死)의 윤회(輪廻)가 거듭되고 있는 세계>는 도대체 어떤 것이길래 오늘도 여기를 떠나고자 일심(一心)으로 염원하며 정진(精進)을 거듭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것을 이 세계설을 통하여 알아보기로 하자. 불교(佛敎)에선 우주(宇宙)를 말 할때 세계(世界) 또는 세간(世間)이라고 하는데 이것에 관한 문헌은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그렇다고 하여 이러한 세계설이 불교 고유의 학설이라고만 할 수는없다. 우리가 익히 아는 바대로 불교의 궁극 목적은 일체의 중생으로 하여금 이 우주(宇宙) 인생(人生)의 진리(眞理)를 빨리 깨달아 모든 고통을 여의고 해탈(解脫)케 하는데 있지 이 우주가 생겼는가 하는 등의 기원이나 구성 같은 것을 밝히려 함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이 세계설도 또한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각자의 현실상을 바로 보고 그 괴로운 현실상을 떠나게 하고자 하는 중생교화(衆生敎化)의 한 방편으로 사용된 것임에 틀림이 없으며 이것은 당시에 인도 사회에 일반 속설(俗說)을 교화의 수단으로 쓰고자 불교에 받아들려 불교적으로 해석하고 불교 교리에 맞도록 개량하기도 하여 결국은 이것을 <불교의 세계설>로 교정화시킨 것이라고 보는것이 학계(學界)의 정설(定說)이다. 이러한 세계설을 불교 고유의 것이라고 하여 주장하게 된 것은 소승불교시대(小乘佛敎時代)인데 론부(論部)에서도 이것을 주장하는 것은 하나의 학설을 세우기 위함의 목적이 아니라 이것을 통하여 각자 중생으로서의 현실상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여 실천 수행의 정도(正道)를 따라 한시라도 빨리 고해(苦海)를 떠나 해탈(解脫) 열반(涅槃)에 이르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그것은 이 세계설의 내용을 이루고 있는 삼계설(三界說)의 전개 순서가 지옥(地獄)으로 부터 점차로 발전하는 단계를 따라 이루어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그리고 이 세계설은 점차 구체화되어 갔는데 후세 대승불교(大乘佛敎)에 이르러서는 객관적인 세계로서 인정하기는 하나 절대적인 객관세계가 아닌 주관에 반영되어 나타난 객관적인 세계로 여겨지게 되었다. 끝으로 이 세계설을 보아감에 있어서 한 가지 부언할 것은 이 세계설이 이와 같이 이루어지고 이와 같은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하여 하나의 학설이나 방편으로 그냥 간과(看過)해 버려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비록 이 세계설이 당시 인도의 속설(俗說) <예를 들면 수미산설, 지옥설 등>을 불교에 받아들이는 것부터 비롯되었고 또 이 속엔 상징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 있어도 보이지만 불교에서 발달한 세계설은 우리 중생의 세계를 그대로 그려 놓은 그러므로 우리가 또한 원리(遠離) 하여야 할 현실상(現實相)이 담겨져 있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세계설은 과연 어떠한 내용의 것인가. 세계설에 관한 많은 문헌 중에서도 비교적 자세히 나와 있는 것은 장아함경(長阿含經 권18~22)까지와 구사론(俱舍論)인데 여기에선 이들 경론(經論)을 위주로 하되 다른 문헌도 참고하여 가면서 간략히 불교의 세계설을 알아보기로 하겠다.
앞의 제법론(諸法論)은 우리가 사유(思惟) 관찰(觀察)의 대상으로 하는 일체 제법(諸法)을 그 성질에 따라 분류 정리한 것이다. 그러면 그러한 우리가 생사윤회(生死輪廻)를 거듭하며 살고있는 세계(世界)는 어떤한가, 이 세계설(世界說)은 바로 이러한 중생(衆生)의 세계를 계층별로 나누어 정리해 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또한 이 세계설(世界說)은 어떤 의미에선 중생세간(衆生世間)에 대한 분류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제법론(諸法論)이나 세계설(世界說)이나 사람을 중심으로 한 점에 있었서는 공통이다. 그럼 우리는 이제 이 <우리가 중생으로서 살고 있는 세계> 즉 <생사(生死)의 윤회(輪廻)가 거듭되고 있는 세계>는 도대체 어떤 것이길래 오늘도 여기를 떠나고자 일심(一心)으로 염원하며 정진(精進)을 거듭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것을 이 세계설을 통하여 알아보기로 하자. 불교(佛敎)에선 우주(宇宙)를 말 할때 세계(世界) 또는 세간(世間)이라고 하는데 이것에 관한 문헌은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그렇다고 하여 이러한 세계설이 불교 고유의 학설이라고만 할 수는없다. 우리가 익히 아는 바대로 불교의 궁극 목적은 일체의 중생으로 하여금 이 우주(宇宙) 인생(人生)의 진리(眞理)를 빨리 깨달아 모든 고통을 여의고 해탈(解脫)케 하는데 있지 이 우주가 생겼는가 하는 등의 기원이나 구성 같은 것을 밝히려 함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이 세계설도 또한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각자의 현실상을 바로 보고 그 괴로운 현실상을 떠나게 하고자 하는 중생교화(衆生敎化)의 한 방편으로 사용된 것임에 틀림이 없으며 이것은 당시에 인도 사회에 일반 속설(俗說)을 교화의 수단으로 쓰고자 불교에 받아들려 불교적으로 해석하고 불교 교리에 맞도록 개량하기도 하여 결국은 이것을 <불교의 세계설>로 교정화시킨 것이라고 보는것이 학계(學界)의 정설(定說)이다. 이러한 세계설을 불교 고유의 것이라고 하여 주장하게 된 것은 소승불교시대(小乘佛敎時代)인데 론부(論部)에서도 이것을 주장하는 것은 하나의 학설을 세우기 위함의 목적이 아니라 이것을 통하여 각자 중생으로서의 현실상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여 실천 수행의 정도(正道)를 따라 한시라도 빨리 고해(苦海)를 떠나 해탈(解脫) 열반(涅槃)에 이르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그것은 이 세계설의 내용을 이루고 있는 삼계설(三界說)의 전개 순서가 지옥(地獄)으로 부터 점차로 발전하는 단계를 따라 이루어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그리고 이 세계설은 점차 구체화되어 갔는데 후세 대승불교(大乘佛敎)에 이르러서는 객관적인 세계로서 인정하기는 하나 절대적인 객관세계가 아닌 주관에 반영되어 나타난 객관적인 세계로 여겨지게 되었다. 끝으로 이 세계설을 보아감에 있어서 한 가지 부언할 것은 이 세계설이 이와 같이 이루어지고 이와 같은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하여 하나의 학설이나 방편으로 그냥 간과(看過)해 버려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비록 이 세계설이 당시 인도의 속설(俗說) <예를 들면 수미산설, 지옥설 등>을 불교에 받아들이는 것부터 비롯되었고 또 이 속엔 상징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 있어도 보이지만 불교에서 발달한 세계설은 우리 중생의 세계를 그대로 그려 놓은 그러므로 우리가 또한 원리(遠離) 하여야 할 현실상(現實相)이 담겨져 있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세계설은 과연 어떠한 내용의 것인가. 세계설에 관한 많은 문헌 중에서도 비교적 자세히 나와 있는 것은 장아함경(長阿含經 권18~22)까지와 구사론(俱舍論)인데 여기에선 이들 경론(經論)을 위주로 하되 다른 문헌도 참고하여 가면서 간략히 불교의 세계설을 알아보기로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