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광명경
구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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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09:39
금광명경(金光明經)
본(本) 경(經)은 현존(現存)하는 한역본 (韓譯本)으론
(1)북량(北涼)의 담무참(曇無讖 = 385 ~ 433)이 번역한 금광명경(金光明經) 4권과
(2)수대(隨代)에 보귀(寶貴), 언종(彦琮), 비장방(費長房) 등 여렸의 번역(飜譯)을 모아서 만든 합부금광명경(合部金光明經) 8권과
(3)당(唐)의 의정(義淨)이 703년에 번역(飜譯)한 금광명최승왕경(金光明最勝王經)10권의 세가지가 있는것. 이것은 인왕도량(仁王道場)을 연 신라(新羅) 고려인(高麗人)들이 또한 열었던 금광명경법회(金光明經法會)의 사상적(思想的) 근원이 되었던 것임은 물론 현재의 방생법회(放生法會), 사리신앙(舍利信仰) 등에도 많은 사상적(思想的) 근원(根原)과 영향을 많이 주어왔던 경(經)이다.
一. 사천왕(四天王)과의 관계
사천왕(四天王)이 부처님의 부촉(付囑)을 받고 불법(佛法)을 옹호(擁護)하리라는 것은 이미 아함경(阿含經)상 에도 나온 것이다. 따라서 사천왕(四天王)은 이미 오래전부터 세인(世人)들의 가슴에 호세천왕(護世天王)으로 믿어져 왔고 또 숭앙(崇仰)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이 금광명경(金光明經)에 와서는 그 관계가 더욱 구체화되어 사천왕(四天王)과의 호국면(護國面)을 강조하게 되었으니 이제 그 근거가 되었으리라는 가장 중요한 부분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부처님이시여 이 금광명(金光明)의 미묘(微妙)한 경전(經典)이 오는 세상(世上)에 유포될 때에는 도시거나 시골이거나 어디이던간에 이 경(經)이 있는 곳을 따라 그 나라 왕(王)이 하늘의 법(法)으로 세상(世上)을 다스리고 또 이 경(經)을 지성(至誠)으로 공경(恭敬)하여 듣고 또한 이 경(經)을 수지(受持)하는 사부대중(四部大衆)을 소중하게 여겨 공양(供養)하고 이바지 하오면 이 인연(因緣)으로 우리들도 그 때마다 이 경(經)을 얻어 듣게 될 것이며 듣고는 몸(신 = 身)과 기운(氣運)이 충실하고 마음이 용맹해져 모든 위덕(威德)이 구족(具足)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 한향없는 신장들은 항상 형상을 나타내지 아니하고 이 경(經)이 퍼지는 곳을 따라 옹호하여 장난이 없게 하며 또 이 경(經)을 듣는 왕(王)이나 백성들을 보호하여 환난을 덜어주고 안락을 받게 하며 타지방에서 오는 원수와 적들을 물리치겠습니다. 또 왕으로서 이 경(經)을 들을 때에 어떤 이웃나라에서 나쁜 생각으로 군대를 이르켜 이 나라를 침략하려 하더라도 이 경의 위신력으로써 그 나라에 다른 원수가 있어 난리가 생길 것이며 또 여러가지 시끄러운 일과 재난(災亂)과 질병(疾病)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 때에 그 다른 원수가 이러한 나쁜 재난을 일으킨 뒤에 군대를 동원하여 이 나라에 와서 이익(利益)을 탐(貪)하여 전쟁을 일으킨다면 우리들은 권속(眷屬)과 수 많은 귀신(鬼神)들과 더불어 형상을 숨기고 구원하며 이 편을 도와 저 원수들이 스스로 물러나게 할 것입니다. 여러가지 무서운 난리가 생기게 하며 저 원수의 군대가 이 나라까지 침략하여 오지도 못할 것인데 어찌 이 나라를 파괴할 수 있겠사옵니까.> 금광명경(金光明經) 사천왕품(四天王品) 이 사천왕품(四天王品)은 결국 이와 같이 사천왕(四天王)이 금광명경(金光明經)이 유포되고 있는 나라를 지켜준다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의정(義淨)의 역(譯)에서는 이것을 사천왕호국품(四天王護國品)이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사천왕(四天王)에 대한 마음은 원시경전에서(原始經典)에서 부터 대승경전(大乘經典)에 이르기까지 줄곧 불교신앙(佛敎信仰)의 한 부분을 차지하여 중요하게 여겨져 왔던 것이나 그것은 본(本) 금광명경(金光明經)에 와서 절정을 이루었다. 할 수 있는 것으로 이 사천왕(四天王)에 대한 신앙(信仰)은 지금까지도 면밀히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신라(新羅)나 고려(高麗)때 금광명도량(金光明道場)을 차렸다는 것만이 그 예(例)는 아니다. 신라시대에 경주 낭산(狼山)에 세워졌셨다는 사천왕사(四天王寺)도 반드시 금광명경(金光明經)에 의지하였다는 기록은 없다 하여도 당(唐)의 침략소식을 듣고 세웠다는 점을 상기할 땐 본(本) 경(經)의 말씀에 따라 건립(建立)하였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일본의 나라(奈良)에 있는 현재의 동대사(東大寺)는 금광명사천왕호국지사(金光明四天王護國之寺)라 하였던 것으로 보아 이것은 틀림없이 본(本) 경(經)의 사천왕품(四天王品)에 의해 세운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의 고찰(古刹)에 가면 절 입구에 흔히 천왕문(天王門)이란 것이 있어 강철같은 몸에 창검을 치켜 들고 죄인을 발로 밟아 당장 내장이라도 터트릴듯한 무서운 형상의 천왕을 비롯한 사천왕(四天王)이 분노의 상을 띄고 양쪽 옆에 두분씩 갈라져 봉안되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서늘하게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 사천왕(四天王)이 봉안된 것이 언제 어떤 연유에 의하여인지는 잘 몰라도 이와 같은 사청왕(四天王)에 대한 믿음에서 싹튼 것은 불문가지(不聞可知)의 사실일 것이다. 사천왕(四天王)의 상은 분노의 무서운 형상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은 불법(佛法)을 비방하고 민족의 행복을 깨트리고 국가를 망치려는 죄인(罪人)이나 악인(惡人)에게 한해서 그런 것이다. 그러나 불법(佛法)을 보호하고 겨레를 아끼고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에겐 낮이나 밤이나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부처님의 부촉을 받고 부처님전에 서원(誓願)한 대로 모든 악마(惡魔)를 막아 불법(佛法)을 보호(保護)하고 도량(道場)을 보호(保護)하고 그를 보호하고 겨래와 나라를 보호하고 있음을 알지니 불자(佛子)는 오히려그 모습에서 끊임없는 자비(慈悲)와 감사를 느낄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한 불법(佛法)의 도량(道場)을 세우면서 천왕문(天王門)을 세워 길이 나라의 평안을 이루려 했던 바로 우리의 조상인 선각(先覺)에게도 아울러 감사를 느낄 줄 아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어찌 그 안에 조금이라도 허강 허언(虛講 虛言)이 있으리요. 나만이 옳은 불교(佛敎)을 하는 양 외치는 우리들, 실로 우리는 겨레의 행복을 박탈하려는 악(惡)에게 천왕으로서 악(惡)에게 사천왕(四天王)으로써 군립 할 수는 없을까.
본(本) 경(經)은 현존(現存)하는 한역본 (韓譯本)으론
(1)북량(北涼)의 담무참(曇無讖 = 385 ~ 433)이 번역한 금광명경(金光明經) 4권과
(2)수대(隨代)에 보귀(寶貴), 언종(彦琮), 비장방(費長房) 등 여렸의 번역(飜譯)을 모아서 만든 합부금광명경(合部金光明經) 8권과
(3)당(唐)의 의정(義淨)이 703년에 번역(飜譯)한 금광명최승왕경(金光明最勝王經)10권의 세가지가 있는것. 이것은 인왕도량(仁王道場)을 연 신라(新羅) 고려인(高麗人)들이 또한 열었던 금광명경법회(金光明經法會)의 사상적(思想的) 근원이 되었던 것임은 물론 현재의 방생법회(放生法會), 사리신앙(舍利信仰) 등에도 많은 사상적(思想的) 근원(根原)과 영향을 많이 주어왔던 경(經)이다.
一. 사천왕(四天王)과의 관계
사천왕(四天王)이 부처님의 부촉(付囑)을 받고 불법(佛法)을 옹호(擁護)하리라는 것은 이미 아함경(阿含經)상 에도 나온 것이다. 따라서 사천왕(四天王)은 이미 오래전부터 세인(世人)들의 가슴에 호세천왕(護世天王)으로 믿어져 왔고 또 숭앙(崇仰)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이 금광명경(金光明經)에 와서는 그 관계가 더욱 구체화되어 사천왕(四天王)과의 호국면(護國面)을 강조하게 되었으니 이제 그 근거가 되었으리라는 가장 중요한 부분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부처님이시여 이 금광명(金光明)의 미묘(微妙)한 경전(經典)이 오는 세상(世上)에 유포될 때에는 도시거나 시골이거나 어디이던간에 이 경(經)이 있는 곳을 따라 그 나라 왕(王)이 하늘의 법(法)으로 세상(世上)을 다스리고 또 이 경(經)을 지성(至誠)으로 공경(恭敬)하여 듣고 또한 이 경(經)을 수지(受持)하는 사부대중(四部大衆)을 소중하게 여겨 공양(供養)하고 이바지 하오면 이 인연(因緣)으로 우리들도 그 때마다 이 경(經)을 얻어 듣게 될 것이며 듣고는 몸(신 = 身)과 기운(氣運)이 충실하고 마음이 용맹해져 모든 위덕(威德)이 구족(具足)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 한향없는 신장들은 항상 형상을 나타내지 아니하고 이 경(經)이 퍼지는 곳을 따라 옹호하여 장난이 없게 하며 또 이 경(經)을 듣는 왕(王)이나 백성들을 보호하여 환난을 덜어주고 안락을 받게 하며 타지방에서 오는 원수와 적들을 물리치겠습니다. 또 왕으로서 이 경(經)을 들을 때에 어떤 이웃나라에서 나쁜 생각으로 군대를 이르켜 이 나라를 침략하려 하더라도 이 경의 위신력으로써 그 나라에 다른 원수가 있어 난리가 생길 것이며 또 여러가지 시끄러운 일과 재난(災亂)과 질병(疾病)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 때에 그 다른 원수가 이러한 나쁜 재난을 일으킨 뒤에 군대를 동원하여 이 나라에 와서 이익(利益)을 탐(貪)하여 전쟁을 일으킨다면 우리들은 권속(眷屬)과 수 많은 귀신(鬼神)들과 더불어 형상을 숨기고 구원하며 이 편을 도와 저 원수들이 스스로 물러나게 할 것입니다. 여러가지 무서운 난리가 생기게 하며 저 원수의 군대가 이 나라까지 침략하여 오지도 못할 것인데 어찌 이 나라를 파괴할 수 있겠사옵니까.> 금광명경(金光明經) 사천왕품(四天王品) 이 사천왕품(四天王品)은 결국 이와 같이 사천왕(四天王)이 금광명경(金光明經)이 유포되고 있는 나라를 지켜준다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의정(義淨)의 역(譯)에서는 이것을 사천왕호국품(四天王護國品)이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사천왕(四天王)에 대한 마음은 원시경전에서(原始經典)에서 부터 대승경전(大乘經典)에 이르기까지 줄곧 불교신앙(佛敎信仰)의 한 부분을 차지하여 중요하게 여겨져 왔던 것이나 그것은 본(本) 금광명경(金光明經)에 와서 절정을 이루었다. 할 수 있는 것으로 이 사천왕(四天王)에 대한 신앙(信仰)은 지금까지도 면밀히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신라(新羅)나 고려(高麗)때 금광명도량(金光明道場)을 차렸다는 것만이 그 예(例)는 아니다. 신라시대에 경주 낭산(狼山)에 세워졌셨다는 사천왕사(四天王寺)도 반드시 금광명경(金光明經)에 의지하였다는 기록은 없다 하여도 당(唐)의 침략소식을 듣고 세웠다는 점을 상기할 땐 본(本) 경(經)의 말씀에 따라 건립(建立)하였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일본의 나라(奈良)에 있는 현재의 동대사(東大寺)는 금광명사천왕호국지사(金光明四天王護國之寺)라 하였던 것으로 보아 이것은 틀림없이 본(本) 경(經)의 사천왕품(四天王品)에 의해 세운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의 고찰(古刹)에 가면 절 입구에 흔히 천왕문(天王門)이란 것이 있어 강철같은 몸에 창검을 치켜 들고 죄인을 발로 밟아 당장 내장이라도 터트릴듯한 무서운 형상의 천왕을 비롯한 사천왕(四天王)이 분노의 상을 띄고 양쪽 옆에 두분씩 갈라져 봉안되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서늘하게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 사천왕(四天王)이 봉안된 것이 언제 어떤 연유에 의하여인지는 잘 몰라도 이와 같은 사청왕(四天王)에 대한 믿음에서 싹튼 것은 불문가지(不聞可知)의 사실일 것이다. 사천왕(四天王)의 상은 분노의 무서운 형상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은 불법(佛法)을 비방하고 민족의 행복을 깨트리고 국가를 망치려는 죄인(罪人)이나 악인(惡人)에게 한해서 그런 것이다. 그러나 불법(佛法)을 보호하고 겨레를 아끼고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에겐 낮이나 밤이나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부처님의 부촉을 받고 부처님전에 서원(誓願)한 대로 모든 악마(惡魔)를 막아 불법(佛法)을 보호(保護)하고 도량(道場)을 보호(保護)하고 그를 보호하고 겨래와 나라를 보호하고 있음을 알지니 불자(佛子)는 오히려그 모습에서 끊임없는 자비(慈悲)와 감사를 느낄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한 불법(佛法)의 도량(道場)을 세우면서 천왕문(天王門)을 세워 길이 나라의 평안을 이루려 했던 바로 우리의 조상인 선각(先覺)에게도 아울러 감사를 느낄 줄 아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어찌 그 안에 조금이라도 허강 허언(虛講 虛言)이 있으리요. 나만이 옳은 불교(佛敎)을 하는 양 외치는 우리들, 실로 우리는 겨레의 행복을 박탈하려는 악(惡)에게 천왕으로서 악(惡)에게 사천왕(四天王)으로써 군립 할 수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