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涅槃)의 덕(德)
구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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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1 09:41
2. 열반(涅槃)의 덕(德)
그러므로 부처님의 열반(涅槃)은 자연 이승(二乘)들의 열반(涅槃)과 같이 한 쪽으로 치우친 무위공적(無爲空寂)한 것이 될 수는 없으니 이 대반열반 (大般涅槃)엔 삼덕(三德) 사덕(四德) 팔미(八味) 등이 갖추어져 있다고 한다.
(1) 삼덕(三德)
삼덕(三德)이란 애탄품(哀歎品)에 삼점이라는 것이 있다. 이 삼점은 가로나 세로로 또는 떨어져 있어도 안되고 반드시 삼점이 삼각형으로 되어 있어야 된다고 말씀하신 다음 <나도 그와 같아 해탈법(解脫法)도 열반(涅槃)이 아니고 여래(如來)의 몸도 열반(涅槃)이 아니고 마하반야(摩訶般若)도 열반(涅槃)이 아니며 세가지 법(法)이 각기 달라도 열반(涅槃)이 아니니 나는 지금 이러한 세가지 법(法)에 있으면서 중생(衆生)을 의지하여 열반(涅槃)에 든다 하는 것도 이 삼점과 같은 것이니라.> 한 것이 그것이다. 여기서 해탈(解脫) 법신(法身) 반야(般若)는 곧 영원(永遠)한 존재(存在)인 이 세 가지 특성을 말한 것이니 해탈은(解脫)은 생사(生死)의 초월(超越)을 말함이요, 반야(般若)는 생사(生死)를 떠나는 지혜(智慧)를 말함이겠고, 법신(法身)은 곧 영워(永遠)한 진리(眞理)를 몸으로 체득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 하겠다. 다시 말하면 진리(眞理)와 지혜(智慧)와 초월(超越)의 이 세 가지가 영원(永遠)한 존재(存在)의 특성이 된다는 것이니 이들은 하나이면서 셋이며 셋이면서 하나로서 동시에 같이 있다는 것이다. 실로 생사(生死)를 다스리는 지혜(智慧)가 있는 곳엔 생사(生死)에 얽매임이 있을 수 없고. 생사(生死)의 얽매임이 없는 곳에 법신(法身)이 없을 수 없으리니 이것은 바로 선후(先後)가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2)사덕(四德)
열반(涅槃)에는 이 삼덕(三德) 말고 또 사덕(四德)이 있다고 하니 사덕(四德)은 앞에서도 누차 나온 바 있는 상(常) 락(樂) 아(我) 정(淨)이다. 그럼 그 뜻은 무엇일까. 애탄품(哀歎品)엔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다. <상(常)이란 곧 법신(法身)이란 뜻이고, 락(樂)이란 열반(涅槃)이란 뜻이며, 아(我)란 곧 불(佛)이란 뜻이요, 정(淨)이란 것은 법(法)이란 뜻이다.> 다시 말하면
(1)열반(涅槃)의 경지는 생멸(生滅)의 변천함이 없고(상 = 常) (2)생사(生死)의 고통을 떠났으면(락 = 樂) (3)이와 일여(一如)가 된 몸은 망집(妄執)을 떠난 진리(眞理) 그대로이고 모든 법(法)에 자재(自在)한 참된 나(아 = 我) (4)번뇌(煩惱)의 더러움을 ,여의었으면(정 = 淨)이라는 것이다. 동(同) 품(品)에도 이것을 또 다음과 같이 보충 설명하고 있다. <(1)무아(無我)라는 것은 생사(生死)요, 아(我)는 여래(如來)이며 (2)무상(無相)하다는 것은 성문(聲聞) 연각(緣覺)이요, 항상(恒常)하다는 것은 여래(如來)의 법신(法身)이며 (3)고(苦)라는 것은 외도(外道)들이요, 락(樂)이란 것은 열반(涅槃)이며 (4)부정(不淨)하다는 것은 유위법(有爲法)이요 정(淨)하다는 것은 부처님과 보살(菩살)들이 갖는 정법(正法)이다.> 그러므로 앞의 열반(涅槃)과 대반열반(大般涅槃)의 비교에서도 알 수 있었지만 상. 락. 아. 정(常. 樂. 我. 淨)의 사덕(四德)을 갖춘 열반(涅槃)은 이승(二乘)의 열반(涅槃)과는 다른 것으로 이제 이것을 통해 종합하여 그 의의를 알아보면 상주불변(常住不変)하고 복락(福樂)이 넘치며 청정무구(淸淨無垢)한 참다운 존재(存在)가 곧 영원(永遠)의 세계인 열반(涅槃)이라 하는 것이라 하겠다. 상(常), 락(樂), 아(我), 정(淨)이란 곧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 부정(不淨)이란 부정(否定)을 통해 미혹(迷惑)이나 망집(妄執) 등으로 부터 나온 상(常), 락(樂), 아(我), 정(淨)을 깨트리고 앞의 부정적 허무적 견해 또한 깨트린 중도(中道)로서 그러한 미혹(迷惑)이나 망집(妄執)등을 완전히 떠난 여실(如實)한 지혜(智慧)에서의 대긍정(大肯定)으로 상(常), 락(樂), 아(我), 정(淨)으로서의 참다운 세계(世界) 참다운 존재(存在)를 살린 것이다. 따라서 흔히 소승열반(小乘涅槃)과 대승열반(大乘涅槃)의 구분을 이 사덕(四德)의 유무(有無)로서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열반(涅槃)은 자연 이승(二乘)들의 열반(涅槃)과 같이 한 쪽으로 치우친 무위공적(無爲空寂)한 것이 될 수는 없으니 이 대반열반 (大般涅槃)엔 삼덕(三德) 사덕(四德) 팔미(八味) 등이 갖추어져 있다고 한다.
(1) 삼덕(三德)
삼덕(三德)이란 애탄품(哀歎品)에 삼점이라는 것이 있다. 이 삼점은 가로나 세로로 또는 떨어져 있어도 안되고 반드시 삼점이 삼각형으로 되어 있어야 된다고 말씀하신 다음 <나도 그와 같아 해탈법(解脫法)도 열반(涅槃)이 아니고 여래(如來)의 몸도 열반(涅槃)이 아니고 마하반야(摩訶般若)도 열반(涅槃)이 아니며 세가지 법(法)이 각기 달라도 열반(涅槃)이 아니니 나는 지금 이러한 세가지 법(法)에 있으면서 중생(衆生)을 의지하여 열반(涅槃)에 든다 하는 것도 이 삼점과 같은 것이니라.> 한 것이 그것이다. 여기서 해탈(解脫) 법신(法身) 반야(般若)는 곧 영원(永遠)한 존재(存在)인 이 세 가지 특성을 말한 것이니 해탈은(解脫)은 생사(生死)의 초월(超越)을 말함이요, 반야(般若)는 생사(生死)를 떠나는 지혜(智慧)를 말함이겠고, 법신(法身)은 곧 영워(永遠)한 진리(眞理)를 몸으로 체득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 하겠다. 다시 말하면 진리(眞理)와 지혜(智慧)와 초월(超越)의 이 세 가지가 영원(永遠)한 존재(存在)의 특성이 된다는 것이니 이들은 하나이면서 셋이며 셋이면서 하나로서 동시에 같이 있다는 것이다. 실로 생사(生死)를 다스리는 지혜(智慧)가 있는 곳엔 생사(生死)에 얽매임이 있을 수 없고. 생사(生死)의 얽매임이 없는 곳에 법신(法身)이 없을 수 없으리니 이것은 바로 선후(先後)가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2)사덕(四德)
열반(涅槃)에는 이 삼덕(三德) 말고 또 사덕(四德)이 있다고 하니 사덕(四德)은 앞에서도 누차 나온 바 있는 상(常) 락(樂) 아(我) 정(淨)이다. 그럼 그 뜻은 무엇일까. 애탄품(哀歎品)엔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다. <상(常)이란 곧 법신(法身)이란 뜻이고, 락(樂)이란 열반(涅槃)이란 뜻이며, 아(我)란 곧 불(佛)이란 뜻이요, 정(淨)이란 것은 법(法)이란 뜻이다.> 다시 말하면
(1)열반(涅槃)의 경지는 생멸(生滅)의 변천함이 없고(상 = 常) (2)생사(生死)의 고통을 떠났으면(락 = 樂) (3)이와 일여(一如)가 된 몸은 망집(妄執)을 떠난 진리(眞理) 그대로이고 모든 법(法)에 자재(自在)한 참된 나(아 = 我) (4)번뇌(煩惱)의 더러움을 ,여의었으면(정 = 淨)이라는 것이다. 동(同) 품(品)에도 이것을 또 다음과 같이 보충 설명하고 있다. <(1)무아(無我)라는 것은 생사(生死)요, 아(我)는 여래(如來)이며 (2)무상(無相)하다는 것은 성문(聲聞) 연각(緣覺)이요, 항상(恒常)하다는 것은 여래(如來)의 법신(法身)이며 (3)고(苦)라는 것은 외도(外道)들이요, 락(樂)이란 것은 열반(涅槃)이며 (4)부정(不淨)하다는 것은 유위법(有爲法)이요 정(淨)하다는 것은 부처님과 보살(菩살)들이 갖는 정법(正法)이다.> 그러므로 앞의 열반(涅槃)과 대반열반(大般涅槃)의 비교에서도 알 수 있었지만 상. 락. 아. 정(常. 樂. 我. 淨)의 사덕(四德)을 갖춘 열반(涅槃)은 이승(二乘)의 열반(涅槃)과는 다른 것으로 이제 이것을 통해 종합하여 그 의의를 알아보면 상주불변(常住不変)하고 복락(福樂)이 넘치며 청정무구(淸淨無垢)한 참다운 존재(存在)가 곧 영원(永遠)의 세계인 열반(涅槃)이라 하는 것이라 하겠다. 상(常), 락(樂), 아(我), 정(淨)이란 곧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 부정(不淨)이란 부정(否定)을 통해 미혹(迷惑)이나 망집(妄執) 등으로 부터 나온 상(常), 락(樂), 아(我), 정(淨)을 깨트리고 앞의 부정적 허무적 견해 또한 깨트린 중도(中道)로서 그러한 미혹(迷惑)이나 망집(妄執)등을 완전히 떠난 여실(如實)한 지혜(智慧)에서의 대긍정(大肯定)으로 상(常), 락(樂), 아(我), 정(淨)으로서의 참다운 세계(世界) 참다운 존재(存在)를 살린 것이다. 따라서 흔히 소승열반(小乘涅槃)과 대승열반(大乘涅槃)의 구분을 이 사덕(四德)의 유무(有無)로서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