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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처님께서는

구경사 0 281
우리 부처님께서는 자기(自己)를 공(空)으로 하고 자연(自然)이 주어저 있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절대(絶對)에 수순(隨順)하며 증득(證得)하였기 때문에 정각(正覺)을 성취(成就)하였으며 부처라는 인격(人格)을 완성(完成)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에 "삼계(三界)는 나의 것이다. 그 중(中)의 중생(衆生)들은 모두 나의 자식(子息)들이다.,, 라고 하는 자각(自覺)의 위치(位置)에 서게 되었으나 이 자각(自覺)의 위치(位置)에 서게한 법法)에 대(對)해서는 어디까지나 귀의(歸依)하고 존중(尊重)하며 봉사(奉仕)하였던 것입니다. 이 법(法)을 개념적(槪念的)으로 설명(說明)할 경우(境遇), 진여(眞如) 법성등(法性等)과 같이 철학절(哲學的) 표현(表現)이 쓰여지고 있으나 철학상(哲學上)의 원리(原理)나 과학상(科學上)의 법칙(法則)과 같은 동질(同質)의 것이라고 해석(解釋)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것은 본래(本來)부터가 정신적(精神的)이나 가치적(價値的)인 것으로서 무릇 참다운 인격적(人格的) 존재(存在)라고 할 수 있는 성질(性質)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법(法)을 가치적(價値的)으로 표현(表現)하자면 불성(佛性)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인격적(人格的)으로 표현(表現)할 경우(境遇)에는 법신불(法身佛)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 인간(人間)의 귀의대상(歸依對象)으로 된다면 가령 그것이 나무나 돌이라 할지라도 또한 숭배(崇拜)하는 것에 대(對)하여는 그것이 인격적 존재(人格的 存在)로서 활동(活動)을 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한걸음 나아가 부처로서의 석가(釋迦)가 귀의(歸依)하고 존중(尊重)하고 봉사(奉仕)하신 그 불성(佛性)을 살리는 정신적(精神的)인 혈육(血肉)이 된 법(法)이 단순(單純)이 추상적(抽象的)이고 객관적(客觀的)인 이법(理法)이 아니고 석가(釋迦)가 [법(法)을 보는 자는 나를 보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법(法)을 보는 것이다.]라고 선언(宣言)할 만큼 최고(最高) 신성(神聖)한 인격(人格)의 존재(存在)인 것입니다. 소승불교(小乘佛敎)에서는 다만 석가일불(釋迦一佛)과 미래불(未來佛)인 미륵일보살(彌勒一菩薩)의 존재(存在)만 인증(認證)하고 있으나 그러나 대승불교(大乘佛敎)에서는 아미타불(阿彌陀佛), 대일여래(大日如來)같은 제불(諸佛)을 위시(爲始)하여 관음(觀音), 세지(勢至), 문수(文殊), 보현등(普賢) 등(等)의 제보살(諸菩薩)의 존재(存在)를 설(說)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많은 제불(諸佛), 제보살(諸菩薩)도 결국(結局)은 법신(法身)이 본래(本來) 구비(具備)하고 있는 지혜(智慧)와 자비(慈悲)와 덕德)을 혹(或)은 전면적(全面的)으로 인격화(人格化)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것을 보더라도 부처님이 증득(證得)하신 연기법(緣起法)의 본질(本質)이 인격적(人格的)이 였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본래(本來)부터 전연(全然) 인격적 (人格的) 교섭(交涉)을 갖지않는 것이 인격적(人格的)으로 표현(表現)되는 도리(道理)는 없기 때문입니다. 또 불(佛)은 여래(如來)라고도 하는 여래(如來)는 진여(眞如 = 緣起法)로부터 래생(來生) 하였다고 하는 뜻이며 일체를 통섭(統攝)하는 진여(眞如)의 광명(光明)이 인격(人格)위에 빛나는 부처라는 뜻이기 때문에 인격성(人格性)을 떠나서는 진여(眞如)도 그 생명(生命)을 상실(喪失)하고 단순(單純)한 추상개념(抽象槪念)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경전(經典)에는 많은 부처, 여래(如來)가 표현(表現)되어 있으나 불교(佛敎)의 불신론본질(佛身論本質)에서 말한다면 대체(大體)로 삼신(三身)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하나는 먼저 말한 법신불(法身佛)이며 이것은 절대적(絶對的) 통일자 (統一者)이기 때문에 부처님과 같이 특(特)히 뛰어난 종교적(宗敎的) 예지(叡智)를 소유(所有)하지 않으면 직접(直接) 여기에 도달(到達)하기에는 불가능(不可能)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여기에서 법신불(法身佛)은 두개의 형식(形式)을 가지고 출현(出現)한 것으로서 그 본래(本來) 구비(具備)하고 있는 대자대비 (大慈大悲)를 발휘(發輝)하게 되는 것입니다. 삼신중(三身中)의 타이신(他二身)은 보신불(報身佛)과 응신불(應身佛)로서 먼저 보신불(報身佛)이라 함은 인과(因果)의 상대개념(相對槪念)을 떠나서는 어떠한 사유(思惟)도 행동(行動)도 할 수 없는 중생(衆生)들을 구제(救濟)하기 위(爲)하여 영원(永遠)의 본불(本佛 = 法身佛)이 화신(化身)의 보살(菩薩)이 되어 우리들을 대신 (代身)하여  성취(成就)한 염원(念願)의 과보(果報)로서 다만 정진(精進) 만으로 일체중생(一切衆生)을 평등(平等)하게 성불(成佛)케 하는 구제자(救濟者)가 되었다고 하는 무량광(無量光) 무량수불(無量壽佛)을 지칭(指稱)하는 것이라 하겠으며 다음으로 응신불(應身佛 = 화신불(化身佛)이라 함은 때와 장소 사람의 차별(差別)을 초월(超越)하여 삼세시방(三世十方)의 번뇌망상(煩惱妄想)에 빠진 중생(衆生)들 가운데 나타나 구제(救濟)의 손길을 펴는 것과는 달리 일정(一定)한 때 일정(一定)한 장소 (場所) 일정(一定)한 사람에게 시현(示現)하는 법신불(法身佛)로서 곧 인간계(人間界)의 제약(制約)에 응화(應化)하여 지금으로 부터 이천육백년전(二千六百年前)에 인도(印度)에서 출현(出現)하신 부처님뿐이라 하겠습니다. 이와같이 불신(佛身)을 법(法), 보(報), 화(化) 삼신(三身)으로 나뉘어 보지만 삼신(三身)은 하나이며 법신(法身)을 떠나서는 보신(報身), 화신(化身)도 있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법신불(法身佛)은 상대개념 (相對槪念)에 집착(執着)되어 있는 중생(衆生)들에게 있어서는 도달(到達)하기 불가능(不可能)한 일이며 오직 인간사회(人間社會)에 출현(出現)하신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만이 증득(證得)하신 법신불(法身佛)의 본래(本來) 갖추고 있는 대자대비(大慈大悲)하신 덕(德)을 지금(至今) 우리 중생(衆生)들은 추앙(推仰)하고 따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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