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淨土) 구현(具顯)의 방법(方法)
구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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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3 11:06
2. 정토(淨土) 구현(具顯)의 방법(方法)
그러면 이러한 정토는 어떻게 구현(具顯)하는 것인가.이것에 대해선 동(同) 품(品)에 <직심(直心)이 보살(菩薩)의 정토(淨土)이니 보살(菩薩)이 성불(成佛)할 때 아첨하지 않는 중생(衆生)이 그 나라에 와서 나며, 심심(深心)이 보살(菩薩)의 정토(淨土)이니 보살(菩薩)이 성불(成佛)할 때 공덕(功德)이 구족(具足)한 중생(衆生)이 그 나라에 태어나며 보리심(菩提心)이 보살(菩薩)의 정토(淨土)이니 보살(菩薩)이 성불(成佛)할 때 대승(大乘) 중생(衆生)이 그 나라에 와서 나며 . . . . . 등 이라고 설(說)해져 보살(菩薩)은 직심(直心 = 곧은 마음) 심심(深心 = 깊은 마음) 보리심(菩提心 = 보리(菩提)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 굽은 마음을 가진 예토(穢土)의 중생(衆生)에겐 먼저 직심(直心)으로 그 마음을 곧게 하고, 엷은 마음으로 선행공덕(善行功德)을 안 쌓으면 심심(深心)으로 그 마음을 깊게 하고 무명(無明)에 덮혀 지혜(智慧)의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보살(菩薩)은 보리심(菩提心)으로 그 중생(衆生)의 무명(無明)을 굴려 지혜(智慧)의 깨달음을 얻게 하여야 하니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육바라밀(六波羅蜜)과 삼십칠도품(三十七道品)과 십선(十善) 등의 온갖 선행(善行)을 닦게 되면 그 곳이 곧 정토(淨土)가 된다는 것이다. 실로 악법(惡法)을 행하면 예토(穢土)가 아닌 곳이 없고 지혜(智慧)를 가져 선법(善法)을 행(行)하면 정토(淨土)가 아닌 곳이 없을지니 보살(菩薩)의 정토(淨土)란 곧 직심(直心), 심심(深心), 보리심(菩提心)을 가지고 선법(善法)으로써 중생(衆生)을 교화(敎化)하는 곳이 된다. 보살(菩薩)의 마음따라 중생(衆生)의 마음 또한 깨끗해져 다 같이 선법(善法)을 행하면 어찌 정토(淨土)가 아니리요. 그러므로 동(同) 품(品)에서는 또 이렇게 쓰여 있다. <만약 보살(菩薩)이 정토(淨土)를 얻고자 하면 그 마음을 깨끗이 하라. 그 깨끗한 마음에 따라서 곧 불토(佛土)가 깨끗해지기 때문이다.> 중생(衆生)은 누구나 다 정토(淨土)를 구하길 원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정토(淨土)를 구하려 해도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면 정토(淨土)란 구해지질 않는다. 하지만 마음 그 자체가 정토(淨土)이면 정토(淨土) 아닌 곳이 없을지니 정토(淨土)란 마음을 정(淨)하게 하는데 따라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정토는 어떻게 구현(具顯)하는 것인가.이것에 대해선 동(同) 품(品)에 <직심(直心)이 보살(菩薩)의 정토(淨土)이니 보살(菩薩)이 성불(成佛)할 때 아첨하지 않는 중생(衆生)이 그 나라에 와서 나며, 심심(深心)이 보살(菩薩)의 정토(淨土)이니 보살(菩薩)이 성불(成佛)할 때 공덕(功德)이 구족(具足)한 중생(衆生)이 그 나라에 태어나며 보리심(菩提心)이 보살(菩薩)의 정토(淨土)이니 보살(菩薩)이 성불(成佛)할 때 대승(大乘) 중생(衆生)이 그 나라에 와서 나며 . . . . . 등 이라고 설(說)해져 보살(菩薩)은 직심(直心 = 곧은 마음) 심심(深心 = 깊은 마음) 보리심(菩提心 = 보리(菩提)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 굽은 마음을 가진 예토(穢土)의 중생(衆生)에겐 먼저 직심(直心)으로 그 마음을 곧게 하고, 엷은 마음으로 선행공덕(善行功德)을 안 쌓으면 심심(深心)으로 그 마음을 깊게 하고 무명(無明)에 덮혀 지혜(智慧)의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보살(菩薩)은 보리심(菩提心)으로 그 중생(衆生)의 무명(無明)을 굴려 지혜(智慧)의 깨달음을 얻게 하여야 하니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육바라밀(六波羅蜜)과 삼십칠도품(三十七道品)과 십선(十善) 등의 온갖 선행(善行)을 닦게 되면 그 곳이 곧 정토(淨土)가 된다는 것이다. 실로 악법(惡法)을 행하면 예토(穢土)가 아닌 곳이 없고 지혜(智慧)를 가져 선법(善法)을 행(行)하면 정토(淨土)가 아닌 곳이 없을지니 보살(菩薩)의 정토(淨土)란 곧 직심(直心), 심심(深心), 보리심(菩提心)을 가지고 선법(善法)으로써 중생(衆生)을 교화(敎化)하는 곳이 된다. 보살(菩薩)의 마음따라 중생(衆生)의 마음 또한 깨끗해져 다 같이 선법(善法)을 행하면 어찌 정토(淨土)가 아니리요. 그러므로 동(同) 품(品)에서는 또 이렇게 쓰여 있다. <만약 보살(菩薩)이 정토(淨土)를 얻고자 하면 그 마음을 깨끗이 하라. 그 깨끗한 마음에 따라서 곧 불토(佛土)가 깨끗해지기 때문이다.> 중생(衆生)은 누구나 다 정토(淨土)를 구하길 원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정토(淨土)를 구하려 해도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면 정토(淨土)란 구해지질 않는다. 하지만 마음 그 자체가 정토(淨土)이면 정토(淨土) 아닌 곳이 없을지니 정토(淨土)란 마음을 정(淨)하게 하는데 따라 나타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