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연기
구경사
0
155
06.25 10:30
제4항(第四項) 무진연기(無盡緣起)의 모습(십현연기=十玄緣墍)
이상에서 알아본 것은 볍계연기(法界緣起)의 원리 및 그 관계였다. 그러면 다음엔 이러한 법계(法界)의 모든 사물(事物)은 시간(時間)과 공간(空間)에 걸쳐 어떻게 서로간에 상즉상입(相即相入) 하면서 원융무애(圓融無礙)하게 무진연기(無盡緣起)하는가 그 모습에 대해 알아보자. 이미 앞에서도 누누히 말한 것과 같이 온갖 법(法)은 그 어느 하나도 결코 독립되어 홀로 존재(存在)하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화엄종(華嚴宗)에선 그 어떤 것이든 하나를 취하여 본다 하여도 그것은 그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일(全一)의 관계가 있다고 하여 이것을 열가지 부분으로 나누어 관찰하고 있으니 이것이 소위 십현연기무진법문(十玄緣起無盡法門) 줄여서 십현문(十玄門) 또는 십현연기(十玄緣起)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십현문(十玄門)에는 신(新). 구(舊)의 구별이 있는데 지엄(智嚴 600~ 668, 당(唐), 지상대사(至相 大師)라고도 함, 화엄종(華嚴宗)이 세운 것을 구십현(舊十玄), 현수(賢首643 ~ 712 80화엄경(八十華嚴經)을 필수(筆受), 화엄종(華嚴宗)의 오교장(五敎章)에서 이것을 계승하여 텀현기(探玄記)에 말씀한 것을 신십현(新十玄)이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신십현(新十玄)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다.
1.동시구족상응문(同時具足相應門) : 이것은 십현문(十玄門)의 총설(摠說)에 햬당하는 것으로 법계(法界)의 모든 사물(事物)은 어느 하나도 시간적(時間的)이나 공간적(空間的)으로 보아 독립되어 홀로 존재(存在)하는 것이 없고 서로가 동시(同時)에 불가분이(不可分離)의 관계에 있어 무진(無盡)한 연기체(緣起體)를 이루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과거(過去)와 현재(現在)와 미래(未來)의 법(法)은 그것이 별개가 아니라 시간적(時間的)으로 서로 서로 의지하고 도우면서 동시(同時)에 전후(前後) 시종(始終)이 뒤바뀌거나 섞임이 없이 상속현현(相續 顯現)하는 것이고 모든 현상은 공간적(空間的)으로 같은 때, 같은 곳에 구족(具足)히 서로 응해서 하나가 일체에 즉(即)하고 일체가 하나에 즉(即)하여 마치 둥근 거울에 시방(十方)의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다 비추이는 것과 같이 이 문(門)은 시(時). 공(空)이 동시(同時) 동처(同處)에 구족히 현현(顯現)하는 무진연기(無盡緣起)의 총상(摠相)을 밝힌 것이다.
2. 일다상용부동문(一多相容不同門) : 만상(萬象)을 일(一)과 다(多)에 나누고 그 사이에서 서로 용납하고 서로 섭입(攝入)하여도 조금도 장애되지 않고 그 하나 하나는 그대로의 본성(本性)을 가진다는 것을 밝힌 부분이다. 비유(譬唯)하면 한 방에 백개의 등을 켰을 경우 그 불빛이 제각기 방안에 가득 차지만 서로 서로 걸림이 없는 것과 같다. 그것은 백개의 등불빛을 그대로 두어도 걸림이 없는 것과 같다.
(3). 제법상즉자재문(諸法相即自在門) : 만유재법(萬有諸法)은 일체(一體)라는 면에서 서로 원융무애자재(圓融無礙自在)함을 밝힌 부분이다. 비유(譬唯)하면 마치 호수에 한 물결이 없으면 전체의 물결이 없고 전체의 물결이 없으면 한 물결도 없는 것과 같아 하나가 없으면 일체가 없다는 뜻에서 일즉일체(一即一切)요 전체가 없으면 하나도 없다는 뜻에서 일체즉일(一切即一) 이라고 한다.
(4). 인다라망경계문(因陀羅網境界門) : 인다라망(因陀羅網)은 제망(帝網)이라고도 하는데 제석천(帝釋天)에 있는 보망(寶網 = 보배그물)이다. 낱낱의 그물 코마다 보주(寶珠)를 달았는데 그 낱낱의 보주(寶珠)안에 또 다른 모든 보주(寶珠)의 영상이 나타나 서로 서로 비추고 있다. 그러므로 이 문(門)은 인다라망(因陀羅網)을 비유하여 만유(萬有) 제법(諸法)이 상즉상입(相即相入)하여 무진연기(無盡緣起)하는 것을 설명하는 부문이다.
5. 미세상용안입문(微細相容安立門) : 만유(萬有)의 상(相)에 대하여 일즉다(一即多) 다즉일(多即一)의 관계를 말한 부문으로 일(一)은 능히 다(多)를 용납하고 다(多)가 능히 일(一)을 용납하여 서로 서로 융통무에(融通無礙)함을 말씀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일(一)과 다(多)는 현상 그대로를 깨트리지 않고 그대로 일체(一體)의 관계를 가지기에 모든 것은 하나도 그 개성을 파괴하는 일이 없이 안립(安立)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미세상용(微細相容)이란 일(一)과 다(多)가 상즉상입(相即相入)함이 미세(微細)하면서도 서로 용납한다는 의미로 서로가 용납하여 무애(無碍)함을 강조한 것이다. (6. 으로 계속)
이상에서 알아본 것은 볍계연기(法界緣起)의 원리 및 그 관계였다. 그러면 다음엔 이러한 법계(法界)의 모든 사물(事物)은 시간(時間)과 공간(空間)에 걸쳐 어떻게 서로간에 상즉상입(相即相入) 하면서 원융무애(圓融無礙)하게 무진연기(無盡緣起)하는가 그 모습에 대해 알아보자. 이미 앞에서도 누누히 말한 것과 같이 온갖 법(法)은 그 어느 하나도 결코 독립되어 홀로 존재(存在)하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화엄종(華嚴宗)에선 그 어떤 것이든 하나를 취하여 본다 하여도 그것은 그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일(全一)의 관계가 있다고 하여 이것을 열가지 부분으로 나누어 관찰하고 있으니 이것이 소위 십현연기무진법문(十玄緣起無盡法門) 줄여서 십현문(十玄門) 또는 십현연기(十玄緣起)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십현문(十玄門)에는 신(新). 구(舊)의 구별이 있는데 지엄(智嚴 600~ 668, 당(唐), 지상대사(至相 大師)라고도 함, 화엄종(華嚴宗)이 세운 것을 구십현(舊十玄), 현수(賢首643 ~ 712 80화엄경(八十華嚴經)을 필수(筆受), 화엄종(華嚴宗)의 오교장(五敎章)에서 이것을 계승하여 텀현기(探玄記)에 말씀한 것을 신십현(新十玄)이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신십현(新十玄)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다.
1.동시구족상응문(同時具足相應門) : 이것은 십현문(十玄門)의 총설(摠說)에 햬당하는 것으로 법계(法界)의 모든 사물(事物)은 어느 하나도 시간적(時間的)이나 공간적(空間的)으로 보아 독립되어 홀로 존재(存在)하는 것이 없고 서로가 동시(同時)에 불가분이(不可分離)의 관계에 있어 무진(無盡)한 연기체(緣起體)를 이루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과거(過去)와 현재(現在)와 미래(未來)의 법(法)은 그것이 별개가 아니라 시간적(時間的)으로 서로 서로 의지하고 도우면서 동시(同時)에 전후(前後) 시종(始終)이 뒤바뀌거나 섞임이 없이 상속현현(相續 顯現)하는 것이고 모든 현상은 공간적(空間的)으로 같은 때, 같은 곳에 구족(具足)히 서로 응해서 하나가 일체에 즉(即)하고 일체가 하나에 즉(即)하여 마치 둥근 거울에 시방(十方)의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다 비추이는 것과 같이 이 문(門)은 시(時). 공(空)이 동시(同時) 동처(同處)에 구족히 현현(顯現)하는 무진연기(無盡緣起)의 총상(摠相)을 밝힌 것이다.
2. 일다상용부동문(一多相容不同門) : 만상(萬象)을 일(一)과 다(多)에 나누고 그 사이에서 서로 용납하고 서로 섭입(攝入)하여도 조금도 장애되지 않고 그 하나 하나는 그대로의 본성(本性)을 가진다는 것을 밝힌 부분이다. 비유(譬唯)하면 한 방에 백개의 등을 켰을 경우 그 불빛이 제각기 방안에 가득 차지만 서로 서로 걸림이 없는 것과 같다. 그것은 백개의 등불빛을 그대로 두어도 걸림이 없는 것과 같다.
(3). 제법상즉자재문(諸法相即自在門) : 만유재법(萬有諸法)은 일체(一體)라는 면에서 서로 원융무애자재(圓融無礙自在)함을 밝힌 부분이다. 비유(譬唯)하면 마치 호수에 한 물결이 없으면 전체의 물결이 없고 전체의 물결이 없으면 한 물결도 없는 것과 같아 하나가 없으면 일체가 없다는 뜻에서 일즉일체(一即一切)요 전체가 없으면 하나도 없다는 뜻에서 일체즉일(一切即一) 이라고 한다.
(4). 인다라망경계문(因陀羅網境界門) : 인다라망(因陀羅網)은 제망(帝網)이라고도 하는데 제석천(帝釋天)에 있는 보망(寶網 = 보배그물)이다. 낱낱의 그물 코마다 보주(寶珠)를 달았는데 그 낱낱의 보주(寶珠)안에 또 다른 모든 보주(寶珠)의 영상이 나타나 서로 서로 비추고 있다. 그러므로 이 문(門)은 인다라망(因陀羅網)을 비유하여 만유(萬有) 제법(諸法)이 상즉상입(相即相入)하여 무진연기(無盡緣起)하는 것을 설명하는 부문이다.
5. 미세상용안입문(微細相容安立門) : 만유(萬有)의 상(相)에 대하여 일즉다(一即多) 다즉일(多即一)의 관계를 말한 부문으로 일(一)은 능히 다(多)를 용납하고 다(多)가 능히 일(一)을 용납하여 서로 서로 융통무에(融通無礙)함을 말씀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일(一)과 다(多)는 현상 그대로를 깨트리지 않고 그대로 일체(一體)의 관계를 가지기에 모든 것은 하나도 그 개성을 파괴하는 일이 없이 안립(安立)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미세상용(微細相容)이란 일(一)과 다(多)가 상즉상입(相即相入)함이 미세(微細)하면서도 서로 용납한다는 의미로 서로가 용납하여 무애(無碍)함을 강조한 것이다. (6. 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