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승
구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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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30 21:02
보살승(菩薩乘)
소승(小乘)에선 보살(菩薩)이 불(佛)이 되는데는 사계성도(四階成道)가 있다고 한다. 사계성도(四階成道)란
1. 제일계(第一階) : 三阿僧祗劫)동안 수많은 부처님 밑에서 6바라밀(六波羅蜜)을 닦는 것.
2. 제이계(第二階) : 100대겁(大劫)동안 32상(三十二相) 80종호(八十種好)등의 상호(相好)를 초감(招感)할 복덕행(福德行)을 닦는것.
3.제삼계(第三階) : 보살(菩薩)의 최후신(最後身)으로 왕궁(王宮)에 강생(降生)하는것.
4. 제사계(第四階) : 전삼계(前三階)에선 하나의 번뇌(煩惱)도 끊지 않고 있다가 보리수(菩提樹) 아래에서 삼십사심(三十四心)으로 번뇌(煩惱)를 끊고 성불(成佛)하는것. <삼십사심 단결성도(三十四心 斷結成道)이다. 여기서 삼십사심 단결성도(三十四心 斷結成道)라는 것은 보살(菩薩)은 제삼계(第三階)까지는 번뇌(煩惱)를 끊지 않고 있다가 보리수(菩提樹) 아래에서 비로소 강렬한 무루지(無漏智)를 발휘하여서 팔인팔지(八忍八智)의 십육심(十六心)으로써 삼계(三界)의 견혹(見惑)을 끊고 다음 무색계(無色界) 비상비비상처지(非想非非想處地)의 구품(九品) 수혹(修惑)을 구무간도(九無間道) 구해탈도(九解脫道)의 십팔심(十八心)으로 끊어 총 삼십육심(三十六心)으로 성불(成佛)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무소유처지(無所有處地) 이하 욕계(欲界)까지의 수혹(修惑)은 이미 유루도(有漏道)인 육행관(六行觀)으로 끊어 다시 끊을 필요가 없다고 하니 육행관(六行觀)이란 추(麁), 고(苦), 장(障)의 삼관(三觀)과 정(靜), 묘(妙), 이(離)의 삼관(三觀)을 말하는 것으로 이생범부(異生凡夫)가 이것을 써서 단혹(斷惑)하기 때문에 세간(世間)의 도(道) 또는 세속도(世俗道)라고 하는데 이것을 쓰는 방법은 이렇다. 즉 자기가 처해 있는 그 지(地) 및 그 하지(下地)에 대해선 이 곳은 거칠고 추한(麁) 곳, 고통스러운 (苦) 곳, 장애스러운(障) 곳이라 관(觀)하고 다음엔 상지(上地)에 대해서 상지(上地)는 적정한(靜) 곳, 묘하고, 즐거운 (妙) 곳, 더러움을 떠난 (離) 곳이라고 관(觀)하여 차츰 상계(上界)로 올라가면서 그 하지(下地)의 번뇌(煩惱)를 끊어간다. 그러나 비상비비상처지(非想非非想處地)는 상지(上地)에 대한 묘락(妙樂)이 있을 수 없으므로 이곳의 번뇌(煩惱)는 못 끊는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최후까지 번뇌(煩惱)를 끊지 않는 이유는 보살(菩薩)은 원래 중생(衆生)을 이익(利益)되게 하는 것이 그 뜻이므로 중생(衆生)을 제도하기 위하여선 먼저 삼계(三界)에 태어나야 하며 또 태어나기 위하여선 태어날 수 있는 업(業)의 연(緣)이 번뇌(煩惱)를 가져야 하기 때문에 이런 필요에 의해 알부러 번뇌(煩惱)를 끊지 않고 있다가 최후 성불(成佛)할 때라야 그를 꾾는다고 한다. 따라서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의 삼승(三乘)으로 볼 땐 보살(菩薩)은 이타(利他)를 자리(自利)로 한다고 하였으니 제일 이근(利根)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리고 여기에서 말하는 보살(菩薩)이란 대승불교(大乘佛敎)에서 멀하는 일반적인 개념의 보살(菩薩)이 아니라 앞에서도 알아본 바와 같이 어느 특정한 보살을 지칭하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하여 성자(聖者)가 되면 그는 해탈(解脫)의 과덕(果德)으로서 삼명(三明) 육신통(六神通) 등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소승(小乘)에선 보살(菩薩)이 불(佛)이 되는데는 사계성도(四階成道)가 있다고 한다. 사계성도(四階成道)란
1. 제일계(第一階) : 三阿僧祗劫)동안 수많은 부처님 밑에서 6바라밀(六波羅蜜)을 닦는 것.
2. 제이계(第二階) : 100대겁(大劫)동안 32상(三十二相) 80종호(八十種好)등의 상호(相好)를 초감(招感)할 복덕행(福德行)을 닦는것.
3.제삼계(第三階) : 보살(菩薩)의 최후신(最後身)으로 왕궁(王宮)에 강생(降生)하는것.
4. 제사계(第四階) : 전삼계(前三階)에선 하나의 번뇌(煩惱)도 끊지 않고 있다가 보리수(菩提樹) 아래에서 삼십사심(三十四心)으로 번뇌(煩惱)를 끊고 성불(成佛)하는것. <삼십사심 단결성도(三十四心 斷結成道)이다. 여기서 삼십사심 단결성도(三十四心 斷結成道)라는 것은 보살(菩薩)은 제삼계(第三階)까지는 번뇌(煩惱)를 끊지 않고 있다가 보리수(菩提樹) 아래에서 비로소 강렬한 무루지(無漏智)를 발휘하여서 팔인팔지(八忍八智)의 십육심(十六心)으로써 삼계(三界)의 견혹(見惑)을 끊고 다음 무색계(無色界) 비상비비상처지(非想非非想處地)의 구품(九品) 수혹(修惑)을 구무간도(九無間道) 구해탈도(九解脫道)의 십팔심(十八心)으로 끊어 총 삼십육심(三十六心)으로 성불(成佛)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무소유처지(無所有處地) 이하 욕계(欲界)까지의 수혹(修惑)은 이미 유루도(有漏道)인 육행관(六行觀)으로 끊어 다시 끊을 필요가 없다고 하니 육행관(六行觀)이란 추(麁), 고(苦), 장(障)의 삼관(三觀)과 정(靜), 묘(妙), 이(離)의 삼관(三觀)을 말하는 것으로 이생범부(異生凡夫)가 이것을 써서 단혹(斷惑)하기 때문에 세간(世間)의 도(道) 또는 세속도(世俗道)라고 하는데 이것을 쓰는 방법은 이렇다. 즉 자기가 처해 있는 그 지(地) 및 그 하지(下地)에 대해선 이 곳은 거칠고 추한(麁) 곳, 고통스러운 (苦) 곳, 장애스러운(障) 곳이라 관(觀)하고 다음엔 상지(上地)에 대해서 상지(上地)는 적정한(靜) 곳, 묘하고, 즐거운 (妙) 곳, 더러움을 떠난 (離) 곳이라고 관(觀)하여 차츰 상계(上界)로 올라가면서 그 하지(下地)의 번뇌(煩惱)를 끊어간다. 그러나 비상비비상처지(非想非非想處地)는 상지(上地)에 대한 묘락(妙樂)이 있을 수 없으므로 이곳의 번뇌(煩惱)는 못 끊는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최후까지 번뇌(煩惱)를 끊지 않는 이유는 보살(菩薩)은 원래 중생(衆生)을 이익(利益)되게 하는 것이 그 뜻이므로 중생(衆生)을 제도하기 위하여선 먼저 삼계(三界)에 태어나야 하며 또 태어나기 위하여선 태어날 수 있는 업(業)의 연(緣)이 번뇌(煩惱)를 가져야 하기 때문에 이런 필요에 의해 알부러 번뇌(煩惱)를 끊지 않고 있다가 최후 성불(成佛)할 때라야 그를 꾾는다고 한다. 따라서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의 삼승(三乘)으로 볼 땐 보살(菩薩)은 이타(利他)를 자리(自利)로 한다고 하였으니 제일 이근(利根)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리고 여기에서 말하는 보살(菩薩)이란 대승불교(大乘佛敎)에서 멀하는 일반적인 개념의 보살(菩薩)이 아니라 앞에서도 알아본 바와 같이 어느 특정한 보살을 지칭하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하여 성자(聖者)가 되면 그는 해탈(解脫)의 과덕(果德)으로서 삼명(三明) 육신통(六神通) 등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