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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第二篇)

구경사 0 330
제2편(第二篇)
불원인연담(不遠因緣談)에는 도솔천(兜率天)에서 카필라성에 강생(降生)하심으로 부터 아시타선인의 예언(豫言), 출가(出家), 설산(雪山)에서의 수도(修道)를 거쳐 보리수(菩提樹) 아래에서의 성도(成道)까지가 설해저 있고
제3편(第三篇)
근인연담(近因緣談)에는 성도(成道) 후 7 7일(七七日)의 사유(思惟)로 급고독장자(給孤独長者)에 의한 기원정사(祇園精舍)의 건립까지가 설해져 있다. 이중 제1편 원인연담(遠因緣談)에서는 과거(過去) 24불(二十四佛) 믿에서 각각 10바라밀(十波羅蜜)을 닦으셨다고 하는 바 그 이유는 스스로 <이 세계에서 보살행(菩薩行)을 완전히 행하여 보리(菩提)를 성숙케 하여 불(佛)이 될 기본의 법(法)은 오직 이 열가지 바라밀(波羅蜜) 밖엔 없다.> 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 인연담(因緣談)의 보살설(菩薩說)은 위의 불종성경(佛種性經)의 것과 동일하다고 하겠다. 이상으로 우리는 남북양전(南北兩傳)에 나타난 보살사상(菩薩思想)을 대충 알아 보았다. 이제 이 양전(兩傳)의 것을 비교해 본다면 북전(北傳)에는 6바라밀(六波羅蜜)로 나와 있는 것이 남전(南傳)에는 10바라밀(十波羅蜜)로 나와 있으며 북전(北傳)에는 6바라밀(六波羅蜜)이 보살(菩薩)의 수행덕목(修行德目)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으나 남전(南傳)에는 10바라밀(十波羅蜜)을 보살(菩薩)의 수행덕목(修行德目)으로 고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보살(菩薩)이라면 반드시 10바라밀(十波羅蜜)을 행(行)하는 것으로 강조되어 있다. 그리고 바라밀(波羅蜜) 사상(思想)이 강조된 북전(北傳)의 대승경전(大乘經典)에 보면 초기(初期)의 것으로 추정되는 대승경전(大乘經典)엔 6바라밀(六波羅蜜)이 후기(後期)의 것으로 추정되는 대승경전(大乘經典)엔 10바라밀(十波羅蜜)로 나와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면과 북전(北傳)의 4아함(四阿含)중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만 이 보살설(菩薩說)이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 시대적으로 보와 북전(北傳)의 6바라밀(六波羅蜜) 사상(思想)이 먼저 성립(成立)되고 그 후에 남전(南傳)의 10바라빌(十波羅蜜) 사상(思想)이 성립된 것이 아닐까,  또는 그보다 더 나아가 생각한다면 북전(北傳)의 육바라밀(六波羅蜜) 사상(思想)은 후에 성립된 것으로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 어떤 목적에서 고의로 넣어진 것이요 남전(南傳)의 10바라밀(十波羅蜜) 사상(思想)도 그러한 것이 않이겠는가 하는 의문도 제기 할 수 있다. 그러나 부처님의 일생이 보시(布施)의 일생이요 그 보시(布施)의 사상(思想)은 소승경전(小乘經典)의 어디에나 흔히 나오는 것이며 남전(南傳)의 바라밀행(波羅蜜行)이 모두 보시(布施)를 제일 처음으로 하고 있으며 완전한 보시(布施)을 하기 위해선 자연히 지계(持戒)니 인욕(忍辱)이니 하는 행(行)이 따라야 하므로 설사 6바라밀(六波羅蜜)이니 10바라밀(十波羅蜜)이니 하여 고정된 것은 일보 양보하여 뒤에 전입(傳入)된 것으로 치더라도 보살행(菩薩行)으로서의 바라밀(波羅蜜) 사상(思想)은 이미 소승경전(小乘經典)에 나와 있다고 아니할 수 없다. 더군다나 북전(北傳)의 대승경전(大乘經典)이라곤 하나도 없는 남전(南傳)의 보살행(菩薩行)으로서의 바라밀(波羅蜜) 사상(思想)이 들어있다는 것은 더욱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따라서 소승불교(小乘佛敎)의 보살설 (菩薩說)이
1.대승(大乘)의 보살(菩薩)과는 달리 부처님의 성도(成道) 이전의 명칭(名稱)과 당래(當來)에 불(佛)이 될 미륵(彌勒) 행자(行者)를 가르키는 말로 좁은 의미에서 쓰였고.
2.바라밀(波羅蜜)도 이 두 보살(菩薩)만이 행하는 특수한 수행덕목(修行德目)으로 나와 있지만 소승불교시대(小乘佛敎時代)에도 엄연히 보살사상(菩薩思想)은 있었으니만큼 보살사상(菩薩思想)이 대승(大乘)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전연 새로운 사상이라고만 보아서는 안 될 것이며 적어도 그 씨앗만큼은 이미 소승불교시대(小乘佛敎時代)에 비록 후기(後期)라 할지언정 벌써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대승경전(大乘經典)에 오면 이 보살사상(菩薩思想)은 적극적으로 강조되어 보살(菩薩)은 어느 특정한 성자(聖者)만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 바라밀행(波羅蜜行)을 하는 모든 불자(佛子)를 가르키는 명칭(名稱)으로 확대되었고 바라밀행(波羅蜜行)은 의례 불자(佛子)라면 당연히 닦아야 할 수행덕목(修行德目)으로 일반화되었다. 이것은 뒤의 대승불교편(大乘佛敎偏)에서 다시 이야기 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곧 누구나가 다 보살행(菩薩行)을 닦고 또 보살(菩薩)이 대게끔 하고자 한 큰 사상적 발전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발전을 있게 한 것은 물론 대승불교인(大乘佛敎人)들이겠지만 사실로 이러한 보살설(菩薩說)을 가지고 보살사상(菩薩思想)을 크게 꽃 파우려 처음 시도한 사람은 어느 부파(部派) 사람들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겠지만 앞의 아라한관(阿羅漢觀)이나 뒤의 불타관(佛陀觀)에서도 엿볼 수 있겠지만 주로 대중부계(大衆部系)의 여러 선각자(先覺者)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또한 그것은 유부(有部)에선 보살(菩薩)이 수행(修行)을 한다 하여도 수하성도전(樹下成道前)까지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 함에 반해 대중부(大衆部)에선 이미 그 전부터를 성인(聖人)이라 한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추지(推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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