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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렇게 차별을

구경사 0 672
하지만 이렇게 차별을 두어 설한 것은 거의 없는 실정이니 우리는 원시경전(原始經典)인 아함경(阿含經)에 의하는 한 불(佛)과 아라한(阿羅漢)은 같은 의미로 쓰였다고 할 수 밖엔 없다. 그러나 문제는 왜 부처님께서 자신을 깨달은 제자와 자기를 동시에 일러 떳떳이 아라한(阿羅漢)이라고 햐셨음에도 불구하고 부처님으로  부터 같은 아라한(阿羅漢)이라 불리운 부처님의의 제자들은 오직 불(佛)이라는 칭호를 그의 스승인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에께만 사용하고 자기나 자기동료 들에게는 사용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에 있다. 논리적으로 볼 땐 불(佛)과 아라한(阿羅漢)이 같은 내용의 것이라면 아라한(阿羅漢)을 불(佛)이라 하여도 당연하다. 하지만 결코 그렇게는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불(佛)은 점점 더 아라한(阿羅漢) 위에 있는 존재로 여겨젔으니 이미 우리는 그것을 논리적인 문제로 다루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곧
1.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은 스스로 정각(正覺)을 이루심으로 인해 베풀어진 것이며.
2. 설사 깨달음의 내용은 같다고 할지언정 부처님께서는 먼저 누구의 가르침도 받지 않고 홀로 깨달으셨으며 자기들은 그 가르침을 받고 후에 깨달았기 때문에 선각(先覺)과 후각(
(後覺)의 차이가 있으며
3. 그러므로 가르쳐 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 사이엔 자연 사제지간(師弟之間)이 성립되었다.
4. 제자들은 같은 아라한(阿羅漢)이라 하여도 자기들의 스승에 대해선 항상 자기보다 나은 것으로 생각해 공경하고 숭앙하게 되었다는 등의 불교(佛敎)의 출발점이나 양자(兩者) 사이에 생긴 어떤 묘한 윤리관에 의해 부처님께서는 제자인 일반 아라한(阿羅漢)들로 부터 그들과는 다른 보다 더 위대한 선각자(先覺者)요 성인(聖人)으로 추앙 되는 동시 점점 더 이상화(理想化)되어 가지 않았나 생각되다. 현재의 우리가 생각해 보아도 역시 부처님의 그 위대성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면 이러한 아라한(阿羅漢)에 대해 소승불교시대(小乘佛敎時代)의 사람들은 각각 어떻한 견해를 가졌었는가. 알아보자. 먼저 상좌부계(上座部系)의 아라한과(阿羅漢觀)을 알아보면 <아라한(阿羅漢)의 지위에 이르면 유루업(有漏業)의 번뇌(煩惱)같은 것을 증장(增長)시킬 번뇌(煩惱)가 없기 때문에 아라한阿羅漢)에게는 복업(福業)도 증장시킴이 없다.> 던지 또는 <아라한(阿羅漢)의 몸은 무루(無漏)이다.> 하여 아라한(阿羅漢)은 대체로 신성시(神聖視)하여 이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그러나 상좌부계(上座部系)의 아라한관(阿羅漢觀)를 대표하다시피 하는 유부(有部)에서는 대중부(大衆部)가 아라한(阿羅漢)에 대하여 말하는 오사설(五事說)을 극구 반대하고 있으면서도 아라한(阿羅漢)에 대하여는 무학성자(無學聖者)라고 하되 둔근(鈍根)의 아라한(阿羅漢)은 퇴락(退落)하는 일이 있으므로 모두 불퇴(不退)하고 무생지(無生智)를 얻은 것은 아니다. 아라한(阿羅漢)이라 하여도 어느 아라한(阿羅漢)은 전생(前生)에 지은 업(業)으로 인해 송아지를 잃은 사람에게 송아지를 잡아 먹었다는 것으로 오인되어 살해되었으니 이미 지은 업(業)은 면치 못한다. 그리고 아라한(阿羅漢)이라 하여도 새로 복업(福業)을 짓는다고 하는 등 아라한(阿羅漢)도 반드시 절대시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아마 그들이 숙업(宿業)의 소생(所生)인 육신(肉身)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의 열반(涅槃)은 가졌다는 자체에 이미 제약을 받는다. 하여 불안전한 것으로 보고 육신마저도 없어진 그야말로 심신(心身)이 다 멸(滅)한 회신멸지(灰身滅智)의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을 완전한 것으로 이것을 아라한(阿羅漢)의 극과(極果)로 본데도 어느 정도는 이유가 있는 것 같이 여겨진다. 그러면 다음 대중부계(大衆部系)에서는 이 아라한(阿羅漢)에 대해 어떠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나 알아보자. 대중부계(大衆部系)에서는 대천(大天)의 오사설(五事說)에서도 추지(推知)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아라한(阿羅漢)을 그다지 신성시(神聖視)하지 않았던 것 같다. 대천(大天)의 오사(五事)란 여소유(餘所誘) 무지(無知) 유예(猶豫) 타령입(他令入) 도인성고기(道因聲故起)인데 이 다섯가지 중 마지막 것은 성도(聖道)를 일으키는 방법에 관한 것이고 앞의 네가지는 아라한(阿羅漢)에 대한 준엄한 비판이니  이제 이것을 종합해 본다면 <아라한(阿羅漢)은 천마(天魔) 유혹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불염오무지(不染汚無知)를 끊지못하였으므로 가끔 어떤 것을 비판함에 있어서도 명확치 못한 점이 있어 도리(道理 = 처(處)와 비도리(非道理 =비처(非處)를 구분하지 못하며 자신의 내증(內證)도 스스로 알지 못하고 다른 성자(聖者)의 기별을 얻어서 아니 이러한 아라한(阿羅漢)을 어찌 극과(極果)의 성자(聖者)라고 하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부처님 이후의 성자(聖者)라고 하면 아라한(阿羅漢) 뿐이라고 믿어오던 당시의 보수파들에겐 참을 수 없는 비방의 화살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대중부(大衆部)에선 덮어놓고 이렇게 비난만 한 것이 아니라 한편으론 예유(豫有)란 유퇴(有退)의 뜻이요 아라한(阿羅漢)은 무퇴(無退)의 뜻이다.> 혹은 >소작이변(所作已辨) 무수용법(無受用法) 즉 할 일을 다 마치었으며 경계를 반연할 때에는 인연소생(因緣所生)의 법임을 알아 경계의 차별상을 취하지도 않고 고집하지도 않는다.>하여 아라한(阿羅漢)을 중요시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오사(五事)의 의의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이 오사(五事)를 상좌부(上座部)에서는 대천(大天)이 자신의 비행(非行)에 대한 변명처럼 이해시키고 있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는 대천(大天)이 엄정한 견지(見地)에서 당시 아라한(阿羅漢)을 극과(極果)의 성자(聖者)라고 고집하는 교단의 일부 보수주의자들의 편견을 타파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고 또는 그렇게 하기 위하여 일부 진보주의자들이 대천(大天)이란 이름을 빌어 그렇게 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가다. 따라서 대천(大天)이 실제의 인물이던 아니면 허칭(虛稱)의 인물이던간에 그것은 고사하고 한 편으론 아라한(阿羅漢)을 중요시하면서도 또 한 편으론 아라한(阿羅漢)에 대해 이런 오사설(午事說)을 들고 나왔다는 것은 그 때 이미 대중부(大衆部)의 일부에선 대승(大乘)의 불보살(佛菩薩)의 성불사상(成佛思想)이 싹트고 있었던만큼 그 비난의 목적은 단순히 아라한(阿羅漢)의 무가치성(無價植性)을 비난하는데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이상(理想)으로 하는 바 목표를 아라한(阿羅漢)에서 불(佛)로 돌리는데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후에 대승불교(大乘佛敎)에 오면서 그 사상(思想)이 자리(自利) 이타(利他)가 겸비한 보살행(菩薩行)을 닦아 성불(成佛)하는 것으 목표로 하기 때문에 열반(涅槃)에 들어 이타(利他)의 면이 결여된 아라한(阿羅漢)은 이승(二乘)의 성자(聖者)라고 하여 그다지 거론의 대상이 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도 엄연히 대승불교(大乘佛敎)의 국가요 우리도 또한 대승(大乘)을 믿으며 살고 있다. 하지만 비록 이타(利他)의 면은 결여되어 있었다고는 하여도 또 보수주의자란 비평은 들었어도 당시 번뇌(煩惱)를 떠나 열반(涅槃)을 증득하고 또 하고자 했던 그들의 수행은 현시대의 우리 불자로서는 본받아야 할 점도 많다고 본다. 또한 소승이라고 불리울 당시의 사람들은 어떠 했는지 몰라도 원시경전(原始經典)에 보면 아라한(阿羅漢)들이라고 불리었더 성자 (聖者)들이 결코 중생교하(衆生敎化)의 이타면을 도외시 한 것도 아니었다. 법화경(法華經)엔 이승(二乘)들도 다 성불(成佛)할 수 있다고 하여 부처님께서 오백제자(五百弟子)에게 수기(授記)하시는 모습이 설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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