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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적(世間的) 수행법(修行法)

구경사 0 276
세간적(世間的) 수행법(修行法)
지금까지 우리는 불자(佛子)로서의 실천규범인 37도품(三十七道品)과 사무량심(四無量心), 사섭법(四攝法), 육화경행(六和敬行)등을 통하여 어떻게 수행(修行)하여야 할 것인가에 대해 알아 보았다. 그러나 이 수행법(修行法)들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미혹(迷惑)의 중생계(衆生界)에서 열반(涅槃)의 이상계(理想界)로 가기 의한 종적(縱的)인 출세간적(出世間的) 수행법(修行法)이었다. 그러면 이것만 가지면 되는가. 그것은 그렇다고만 볼 수는 없다. 우리는 홀로 태어나 홀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니요 사회의 일원으로 사회속에서 살고 있는 이상 같은 사람끼리의 관계도 원만히 유지해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사회적 동물인 인간으로서 서로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다면 그보다 더 어려운 출세간적(出世間的) 수행(修行)은 그만큼 더 난관에 부닥칠 것이 당연하다. 그렇다면 위와 같은 종적(縱的) 수행(修行)이 아니라 횡적(橫的)으로 같은 사람끼리의 유대 관계를 원만히 해 나아가기 위하여서는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 물론 이것은 사회적으로 또는 가정적으로 지켜야 할 여러가지 덕목(德目)이 많겠으나 그 대표적인 것을 들라면 지은보은행(知恩報恩行)이라 하겠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수행법(修行法)이라 하기 보다는 세각적 윤리도덕(世間的 倫理道德)이라 하는 편이 더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도 불자(佛子)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실천규범이니 넓은 의미에선 수행법(修行法)이라 아니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출세간적(出世間的)인 것에서 세간적인 실천규범으로 방향을 바꾸어 지은보은행(知恩報恩行)부터 알아 보기로 하자.
一. 지은보은행(知恩報恩行)
혹간 불교(佛敎)를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선 불교(佛敎)는 부모(父母) 형제(兄弟)도 다 버리고 입산수도(入山修道)하는 것이다 라는 극히 편협된 정의를 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부처님의 입산수도(入山修道)의 면만을 보고 하는 극히 위험한 단안으로 부처님의 출산교화(出山敎化)의 면은 보지 못하는 무지(無知)에서 나온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부처님께선 그 누구 보다도 어떤 종류의 은혜(恩惠)이건 또 그것이 작던 크던 은혜(恩惠)라면 알아야 하고 또 그것에 반드시 보답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경(經)에 <조그만 은혜(恩惠)도 오히려 잊지 못하거늘 하물며 큰 은혜리요.> 증일아함경 권  34) <은혜(恩惠)를 알고 은혜(恩惠)를 보답하는 자(지은보은자 = 知恩報恩者)는 조그마한 은혜(恩惠)가 있어도 오히려 보답하여 종래 있지 않거늘 하물며 큰 은혜(恩惠)이리요. (잡아함경 권 47) 등으로 말씀하신 것이 그것이다. 아무튼 우리가 진정 불자(佛子)라면 소은(小恩)이건 대은(大恩)이건 은혜(恩惠)를 입었다면 그것을 알아야 하고(지은 = 知恩) 또 그에 보답하도록(보은 = 報恩)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이 불자(佛子)의 도리(道理)이다. 하나의 미물인 개 (견 = 犬)도 주인(主人)의 은혜(恩惠)에 보답한다는데 하물며 불자(佛子)야 말해 무엇하리요.
※그런데 지은보은행(知恩報恩行)은 만선(萬善)의 근본(根本)으로 이것이 행해지지 않는 곳엔 다른 선행(善行)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것은 뒷날 대승불교(大乘佛敎)에 와서도 상당히 중요시되어 있으니 대승경전(大乘經典)에는 <지은보은(知恩報恩)은 바로 보살행(菩薩行)이니 불종(佛種)을 끊지 않은 까닭이다. 대보적경(大寶積經) 권 87. <지은(知恩)은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阿耨多羅三貌三菩提心 : 무상정등정각심 = 無上正等正覺心)을 내고 보은(報恩)은 또한 일체(一切) 중생(衆生)으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게한다.> (대방편불보은경 제삼 보은품) 등으로 설해져 있어 이것을 마땅히 보살이 행할 바 임을 밝히었을 뿐만 아니라 대반야경(大般若經)에는 <만약 지은보은자(知恩報恩者)가 누구나가 물으면 응당 바르게 대답하여 말하되 부처님은 곧 지은보은자(知恩報恩者)라고 하라. 왜냐하면 일체(一切) 세간(世間)에 지은보은(知恩報恩)은 부처님보다 나은 이가 없기 때문이다.> 라고 되어 있어 최고의 지은보은(知恩報恩)은 곧 성불(成佛)하여 일체(一切) 중생(衆生)을 건지는 것이라고 까지도 되어 있다. 지은보은행(知恩報恩行)은 이만큼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까지는 중생(衆生)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장 부처님과 같은 높은 차원에서 그것을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 우리 일반 중생(衆生)은 대자대비(大慈大悲)로 일체중생(一切衆生)을 건지겠다는 큰 구호를 외치기 전에 ㅡ 물론 우리의 이상은 부처님과 같은 저 높은 차원에 두어야 겠지만 ㅡ 스스로 자기를 살펴 출가인(出家人)은 출가인 답게, 재가인(在家人)은 재가인 답게 소박한 인간(人間)끼리의 지은보은행(知恩報恩行)부터 닦아나가야 할 것이다. 이것이 정당한 순서 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것에 어떠한 것이 있을까? 이것은 이왕 지은보은행(知恩報恩行)이 나왔으니 이 지은보은행(地恩報恩行)을 가장 자세히 서술하였다고 볼 수 있는 (대승본생삼지관경 보은품 = 大乘本生心地觀經 報恩品)에 의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기로 하자. 이 것에는 부모은(父母恩) 중생은(衆生恩) 국왕은(國王恩) 삼보은(三寶恩)의 사은(四恩)이 있다고 하며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쓰여져 있다. (다음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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