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가(人間)의 정(情)
구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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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3 10:06
인가(人間)의 정(情)
ㅁ. 아름다운 복숭아 꽃은 사람을 부르지 않지만 그 믿에는 저절로 길이 난다.
ㅁ. 천 만리를 격(隔)해 있어도 따스한 정이 통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정이 흐르는 사람은 그가 부르지 않아도 자연 그를 가까이 하고 싶어져서 그를 찾는 사람이 많게 된다.
ㅁ. 빈천(貧賤)하게 살면 시장 한 복판이 집이라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고 부귀(富貴)하면 깊은 산골짜기에 살아도 찾아오는 이가 많다.
ㅁ. 세상의 인심이란 대개 그러하다. 사람을 보고 사귀는게 아니라 부귀와 권세를 보고 사귀기를 즐긴다. 이것을 풍자한 고사(故事)가 있다.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에 급암(汲黯)과 정당(鄭當)이라는 어진 신하(臣下)가 있었다. 정당도 어질지만 급암은 더육 강직하여 만일 임금이 잘못이라도 있으면 목숨을 두려워 하지 않고 직간(直諫)하기가 예사였다. 그것 가운데 하나만 들어본다면, 어느 날 무제가 조정 대신을 모와 조회하는 자리에서, "짐은 앞으로 이러 이러한 계획인데 경들의 의향은 어떻소?,, 한즉 모든 신하들은 모두 "예 지당하신 말씀 입니다.,, 하고 무조건 찬성하였으나 오직 급암만이 이의를 들고 나셨다. "페하께서 속으로는 욕심이 많으시면서 겉으로만 인의를 베푸는 양 하시니 어떻게 당우(唐虞)의 정치를 본 받을 수 있사오리까?,, 하는지라 무제가 듣고 불쾌하여 조회가 끝나자 다른 신하에게 "심하도다. 급암의 지나치게 우직 함이여!,,하고 불평과 탄식을 하였다. 이러한 급암을 무제는 항시 두러워 하여 급암이 보는 앞에서는 행동 거지를 함부로 하지 못하였다. 어쨌던 당시 급암과 정당 두 사람은 구경(九卿)의 벼슬에 있는 데다 임금조차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현신(賢臣)인지라 그들을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 장사진(長蛇陣)을 이루었다. 그들은 바쁜 중에도 손님들을 하나 하나 만나 보고 후히 대접을 하면서 또한 겸손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날 어떤 사건으로 그들은 관직을 물러나와 한가히 지내게 되었다. 본시 강직한데다 청렴 결백한 벼슬아치로 평소 저축한 재산도 없고 해서 벼슬을 그만 두자 이내 빈궁한 생활을 면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되자 전날 줄지어 찾아오던 손님들은 날이 감에 따라 차츰 줄어 들더니 마침내는 완전히 끊겨 단 한 사람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대문 앞에 새 그물을 쳐도 될 만큼 적막하였다. 이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잃었던 벼슬을 다시 봉명(奉命)받게 되었는데 이 소식이 전해지자 그전에 찾아오던 친척이며 친구, 친지들이 전날같이 다투어 찾아들기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뒷날 사마천(司馬遷)은 이 세태의 냉정함을 탄식하는 글에 "삶과 죽음으로 친구의 정리를 알 수 있고, 가난과 부함으로 서로 사귐의 깊이를 알 수 있으며 귀하고 천함으로 친구의 정의가 나타난다 하였다.
ㅁ. 겸양은 미덕이다. 나이가 배가 많으면 부모처럼 섬기고, 십 년이 많으면 형처럼 대하고 오 년이 많으면 어깨하여 따른다. (계속)
ㅁ. 아름다운 복숭아 꽃은 사람을 부르지 않지만 그 믿에는 저절로 길이 난다.
ㅁ. 천 만리를 격(隔)해 있어도 따스한 정이 통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정이 흐르는 사람은 그가 부르지 않아도 자연 그를 가까이 하고 싶어져서 그를 찾는 사람이 많게 된다.
ㅁ. 빈천(貧賤)하게 살면 시장 한 복판이 집이라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고 부귀(富貴)하면 깊은 산골짜기에 살아도 찾아오는 이가 많다.
ㅁ. 세상의 인심이란 대개 그러하다. 사람을 보고 사귀는게 아니라 부귀와 권세를 보고 사귀기를 즐긴다. 이것을 풍자한 고사(故事)가 있다.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에 급암(汲黯)과 정당(鄭當)이라는 어진 신하(臣下)가 있었다. 정당도 어질지만 급암은 더육 강직하여 만일 임금이 잘못이라도 있으면 목숨을 두려워 하지 않고 직간(直諫)하기가 예사였다. 그것 가운데 하나만 들어본다면, 어느 날 무제가 조정 대신을 모와 조회하는 자리에서, "짐은 앞으로 이러 이러한 계획인데 경들의 의향은 어떻소?,, 한즉 모든 신하들은 모두 "예 지당하신 말씀 입니다.,, 하고 무조건 찬성하였으나 오직 급암만이 이의를 들고 나셨다. "페하께서 속으로는 욕심이 많으시면서 겉으로만 인의를 베푸는 양 하시니 어떻게 당우(唐虞)의 정치를 본 받을 수 있사오리까?,, 하는지라 무제가 듣고 불쾌하여 조회가 끝나자 다른 신하에게 "심하도다. 급암의 지나치게 우직 함이여!,,하고 불평과 탄식을 하였다. 이러한 급암을 무제는 항시 두러워 하여 급암이 보는 앞에서는 행동 거지를 함부로 하지 못하였다. 어쨌던 당시 급암과 정당 두 사람은 구경(九卿)의 벼슬에 있는 데다 임금조차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현신(賢臣)인지라 그들을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 장사진(長蛇陣)을 이루었다. 그들은 바쁜 중에도 손님들을 하나 하나 만나 보고 후히 대접을 하면서 또한 겸손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날 어떤 사건으로 그들은 관직을 물러나와 한가히 지내게 되었다. 본시 강직한데다 청렴 결백한 벼슬아치로 평소 저축한 재산도 없고 해서 벼슬을 그만 두자 이내 빈궁한 생활을 면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되자 전날 줄지어 찾아오던 손님들은 날이 감에 따라 차츰 줄어 들더니 마침내는 완전히 끊겨 단 한 사람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대문 앞에 새 그물을 쳐도 될 만큼 적막하였다. 이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잃었던 벼슬을 다시 봉명(奉命)받게 되었는데 이 소식이 전해지자 그전에 찾아오던 친척이며 친구, 친지들이 전날같이 다투어 찾아들기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뒷날 사마천(司馬遷)은 이 세태의 냉정함을 탄식하는 글에 "삶과 죽음으로 친구의 정리를 알 수 있고, 가난과 부함으로 서로 사귐의 깊이를 알 수 있으며 귀하고 천함으로 친구의 정의가 나타난다 하였다.
ㅁ. 겸양은 미덕이다. 나이가 배가 많으면 부모처럼 섬기고, 십 년이 많으면 형처럼 대하고 오 년이 많으면 어깨하여 따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