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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구경사 0 269
인연(因緣)이란
※세가지 욕심(慾心)에 관하여
부처님께서 우리 인간(人間)의 정신(精神)이 어떠한 것이기에 이렇게 움직여 왔는가? 그리고 그 정신은 어떻게 환경을 만들어 내는가에 대해 마치 작가(作家)가 소설 가운데 나오는 인물의 심리(心理)와 동작(動作)을 자세히 그려내듯이 중생(衆生)의 심리를 명석하게 분석 해부(分析解剖)하여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는 인간의 본질을 생명(生命)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생명은 생각하고 분별(分別)하는 능력(能力)을 갖추고 있는데, 이것을 마음(심 = 心)과 사랑(애 = 愛)과 식별(식 = 識)이라 부르고 있다. 이 욕(欲)은 근본적인 것과 지말적(支末的)인 것으로 나누었을 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곧 유애(有愛)와 비유애(非有愛)와 욕애(欲愛)이다.
유애(有愛)란 내가 살려는 의욕(意欲)이니, 가장 근본적인 생존욕(生存欲)을 가르킨 것이다. 그리고 비유애(非有愛)는 그 생존욕이 어떤 난간에 부딪칠 때에 역(逆)으로 반발하여 생존을 저주(詛呪)하는 의사로 나타난 것을 가르킨 것이다. 또 욕애(欲愛)라 하는 것은 그 생존욕을 객관적인 것으로 본다면 오욕(五欲) 재(財), 색(色), 식(食), 수(睡), 명(名)의 경계에 대하여 나타난 때를 가르켜 이르는 말이다. 우리 인간의 마음은 항상 올바른 동작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생존욕(生存欲)은 맹목적으로 움직이는 것이여서, 지성(知性)으로 말하면 지혜(智慧)가 결핍되어 있다. 이것을 불교(佛敎)에서는 무명(無明)이라고 한다. 무명이란 청정 본연 (淸淨本然)의 진리(眞理)인 본각(本覺)을 밝히지 못한 까닭으로 이렇게 부른다. 이 무명으로 말미암아 무량(無量)한 탐욕으로부터 백팔 번뇌(百八煩惱)와 팔만 진로(八萬塵勞)가 일어난다. 당나라 휘종 황제(幑宗皇帝)가 강소(江蘇)의 금산사(金山寺)를 거동한 일이 있다. 사원(寺院)에서 바라보니 양자강(楊子 江)물이 끝없이 바다로 흘러가고 무수한 배가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다. 황제는 이 풍경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아서 대단히 기뻤다. 대왕은 곁에 앉아 있는 주지(住持) 황백 선사(黃白禪師)에게 물었다. 강상(江上)에 오르내리는 선박(船舶)의 수가 얼마나 되겠는가요?,, "단 두 쌍이 있을 뿐입니다.,, "내가 보기는 수만쌍이라 하여도 맞지 않겠는데 선사는 어찌하여 단 두쌍뿐이라 하는가?,, "한 쌍은 명예의 배요, 또 한 쌍은 이양(利養)의 배입니다.,, 이것을 다시 말하면 인간(人間)은 명예와 이양 때문에 배를 타고 다니는 것이니, 하나는 잘났다고 명예를 자랑하는 놀잇배요, 또 하나는 먹고 살기 위한 장삿배라는 것이다. 그러나 명예나 이양의 속을 들어다보면 다같은 욕심에 지나지 않은 것이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욕애(慾愛)와 유애(有愛)의 갈애(渴愛)가 인생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라 하겠다. 이 무명(無明)인 애욕(愛欲)이 객관적 경계에 대해 움직일 때 그것이 마음에 적합하면 탐욕으로 나타나고, 적합하지 않으면 진에(瞋恚)로 나타나고, 그 애욕 자체가 맹목적인 것일 때에는 우치(愚痴)로 나타난다. 이 빈곤(貧惃), 진에(瞋恚), 우치(愚痴)의 불선근(不善根)이 3독(三毒)의 불선근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은 우리 인간의 악덕(惡德)이 된다. 이 3불선근(三不善根)에서 탐(貪), 진(瞋), 치(痴), 만(慢), 의(疑), 악견(惡見)의 근본 6번뇌(六煩惱)가 일어나고, 분(忿), 한(恨), 뇌(惱), 부(復), 광(誑), 첨(諂), 만(慢), 해(害), 질(嫉), 간(悭), 무참(無慚), 무괴(無愧), 불신(不信), 해태(懈怠), 방일(放逸), 혼침(昏沈), 도거(悼擧), 실념(失念), 부정지(不正知), 산란(散亂)의 지말적(枝末的) 20 번뇌(煩惱)가 일어나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근본 번뇌(根本煩惱)와 지말 번뇌(枝末煩惱)는 모두가 인간의 악덕(惡德)이라 하겠는데, 불교(佛敎)에서는 통칭 번뇌(煩惱)라 하며 참된 마음(진심 = 眞心)이 오염(汚染)된 것이라 부른다. 이 모든 악덕이 탐(貪), 진(瞋), 치(痴)를 근본으로 하여  때를 만나고, 기회를 만나면 부정(不淨)하게 나타나므로 이것을 염인연(染因緣)이라 한다, 그러나 이것이 정인연(淨因緣)으로 나타나면 성불도중생(成佛度衆生)이라 말 할 수 있다. 비파사론(毘婆沙論)을 보면 옛날에 한 청신 거사(淸信居士)가 있었는데, 그는 성품이 인현(人賢)하여 오계(五戒)를 수지하고 청정 자거(淸淨自居)라 하였다. 그런데 어느 때에 목이 말라서 내방(內房)으로 들어가 보니, 큰 그릇에 물이 담겨 있었다. 밫깔이 꼭 물과 같아 거사는 청수(淸水)로 잘못알고 마셨는데 뜻밖에도 입에 맞는 술이었다. 그래서 얼큰하게 취해 있노라니까 이웃집 닭 한 마리가 걸어들어오는 것이었다. 술 김에  그것을 본 거사는 닭고기가 먹고 싶은 생각이 일어나서 막무가내로 닭을 잡아 죽여 날개와 털을 뽑고 더운 물에 튀겨 뜯어 먹었다.이 때에 닭 주인이 닭의 비명(悲鳴)을 듣고 찾아왔는데 그는 아름다운 젊은 여자였다. 거사는 감언 이설로 달래 욕을 보이려 했으나 듣지 않으므로 강제로 범하여 정(情)을 통하고 말았다. 그 후 그녀는 분을 참지 못하여 관가(官家)에 고소해 버렸다.관가에 끌려가 문초를 당하게 된 청신 거사는 그때 자기가 절대로 그러 짓을 한 일이 없다고 딱 잡아떼고 문초를 거절하였다. 불음주계(不飮酒戒)를 범한 것이 원인이 되어 불투도계(不偸盜戒)와 불살생계(不殺生戒)를 범했고 이어서 불사음계(不邪淫戒)와 불망어계(不妄語戒)를 범하게 되었으니 한 계(戒)를 파하므로써 5계(五戒)를 한꺼번에 다 파하게 되었다. 론(論)의 뜻은 불음주계(不飮酒戒)를 막느라고 이렇게 설(說) 하였으나 그 거사의 마음 가운데 염욕(染慾)이 없었다면 설사 청주(淸酒)를 청수(淸水)로 잘못 알고 마셨더라도 한 모금에 맛을 알고 마시지 아니 하였을 것이요,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설사 술 한사발을 마셨더라도 수계자(受戒者)로 남의 닭을 훔쳐 잡거나 남의 여자를 겁탈할 이치가 만무한 것이다. 그리고 잘못을 저질려 놓고 잡혀가서 거짓말을 할 리도 만무한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이런 일을 저질렸는가? 그것은 욕심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사고를 낸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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