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사상(菩薩思想)
구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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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0 06:52
보살사상(菩薩思想)
화엄경(華嚴經)은 부처님께선 선정삼매(禪定三昧)에 들어 계시고 거의 여러 보살(菩薩)들이 설법(說法)하는 것이 특색인데 벽두부터 여러 큰 보살(菩薩)들이 나타나 다 안 읽어 보더라도 보살(菩薩) 위주로 쓰인 경전(經典)이란 인상을 쉽게 받을 수 있다. 실로 화엄경(華嚴經)의 사상(思想)은 출가(出家)와 재가(在家)를 구분하지 않고 그것을 초월한 보살사상(菩薩思想)으로 일관되어 있다. 바로 그것은 불법(佛法)의 실천 수행(修行)은 출가(出家)나 재가(在家)나 하는 것에 있지 않고 그 실천력의 여하에 달려 있다는 말이 된다. 화엄경(華嚴經)은 실로 이런 면에서 대표적 경전(經典)이라 할 수 있으니 입법계품(入法界品)에서 선재동자(善財童子)를 묘각(妙覺)의 위(位)로 인도하는 53선지식(五十三善知識)에는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는 물론 국왕(國王) 바라문(婆羅門) 장자(長者) 동자(童子) 동녀(童女) 천인(天人) 천녀(天女) 優婆夷) 음녀(淫女)에 이르기까지 실로 각 계의 사람들이 들어 있어 형색은 각각 달랐어도 모두가 보살심(菩薩心)을 가지고 보살행(菩薩行)을 닦는 대보살(大菩薩)로 나와있는 점 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느 것이다. 이제 경전상(經典上)에서 보살(菩薩)은 출가(出家) 재가(在家)를 가리지 않는다는 예를 몇가지만 들어보면 문수보살(文殊菩薩)님의 140원(願)중엔 <보살(菩薩)이 재가(在家)함에 마땅히 집이란 것이 그 성(性)이 본래 공(空)한 것을 알아 마땅히 중생(衆生)이 그의 애착으로 부터 생기는 편박(遍迫)을 면하기 원하며 . . . . > <보살(菩薩)이 마땅히 거가(居家)를 버림엔 마땅히 중생(衆生)이 출가(出家)에 걸림이 없어 마음에 해탈(解脫)을 얻기 원(願)하며 . . . .>등으로 출가시(出家時) 재가시(在家時)의 원(願)이 다 들어있고 그것은 지위(地位)에서도 마찬가지이니 십지중(十地中) 초지(初地)인 환희지(歡喜地)에는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초지(初地)에 주(住)함엔 많이 염부제(焰浮提)의 왕(王)이 되어 호귀(豪貴)하고 항상 정법(正法)을 수호(守護)하고 능히 큰 보시(布施)로써 중생(衆生)을 섭취(攝取)하며. . . . >라 하였고 제십지(第十地)에 으르러 서도 <보살(菩薩)이 이 지(地)에 주(住)함엔 많이 마혜수라왕(摩醯首羅王 = 대자재천(大自在天), 초선천(初禪天), 또는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왕이라고도 함)이 되어 법(法)에 자재(自在)하여 능히 중생(衆生)에게 성문(聲聞) 연각(緣覺) 모든 보살(菩薩)의 바라밀행(波羅蜜行)을 주며. . . . > 등으로 도처에 나와 있다. 출가자(出家者)이던 재가자(在家者)이던 보살행(菩薩行)을 몸소 실천수행(實踐修行)하는 자만이 진불자(眞佛子)요 성불(成佛)을 향한 진보살(眞菩薩)일 뿐 형식이나 외모로 진불자(眞佛子) 진보살(眞菩薩)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리라.
화엄경(華嚴經)은 부처님께선 선정삼매(禪定三昧)에 들어 계시고 거의 여러 보살(菩薩)들이 설법(說法)하는 것이 특색인데 벽두부터 여러 큰 보살(菩薩)들이 나타나 다 안 읽어 보더라도 보살(菩薩) 위주로 쓰인 경전(經典)이란 인상을 쉽게 받을 수 있다. 실로 화엄경(華嚴經)의 사상(思想)은 출가(出家)와 재가(在家)를 구분하지 않고 그것을 초월한 보살사상(菩薩思想)으로 일관되어 있다. 바로 그것은 불법(佛法)의 실천 수행(修行)은 출가(出家)나 재가(在家)나 하는 것에 있지 않고 그 실천력의 여하에 달려 있다는 말이 된다. 화엄경(華嚴經)은 실로 이런 면에서 대표적 경전(經典)이라 할 수 있으니 입법계품(入法界品)에서 선재동자(善財童子)를 묘각(妙覺)의 위(位)로 인도하는 53선지식(五十三善知識)에는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는 물론 국왕(國王) 바라문(婆羅門) 장자(長者) 동자(童子) 동녀(童女) 천인(天人) 천녀(天女) 優婆夷) 음녀(淫女)에 이르기까지 실로 각 계의 사람들이 들어 있어 형색은 각각 달랐어도 모두가 보살심(菩薩心)을 가지고 보살행(菩薩行)을 닦는 대보살(大菩薩)로 나와있는 점 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느 것이다. 이제 경전상(經典上)에서 보살(菩薩)은 출가(出家) 재가(在家)를 가리지 않는다는 예를 몇가지만 들어보면 문수보살(文殊菩薩)님의 140원(願)중엔 <보살(菩薩)이 재가(在家)함에 마땅히 집이란 것이 그 성(性)이 본래 공(空)한 것을 알아 마땅히 중생(衆生)이 그의 애착으로 부터 생기는 편박(遍迫)을 면하기 원하며 . . . . > <보살(菩薩)이 마땅히 거가(居家)를 버림엔 마땅히 중생(衆生)이 출가(出家)에 걸림이 없어 마음에 해탈(解脫)을 얻기 원(願)하며 . . . .>등으로 출가시(出家時) 재가시(在家時)의 원(願)이 다 들어있고 그것은 지위(地位)에서도 마찬가지이니 십지중(十地中) 초지(初地)인 환희지(歡喜地)에는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초지(初地)에 주(住)함엔 많이 염부제(焰浮提)의 왕(王)이 되어 호귀(豪貴)하고 항상 정법(正法)을 수호(守護)하고 능히 큰 보시(布施)로써 중생(衆生)을 섭취(攝取)하며. . . . >라 하였고 제십지(第十地)에 으르러 서도 <보살(菩薩)이 이 지(地)에 주(住)함엔 많이 마혜수라왕(摩醯首羅王 = 대자재천(大自在天), 초선천(初禪天), 또는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왕이라고도 함)이 되어 법(法)에 자재(自在)하여 능히 중생(衆生)에게 성문(聲聞) 연각(緣覺) 모든 보살(菩薩)의 바라밀행(波羅蜜行)을 주며. . . . > 등으로 도처에 나와 있다. 출가자(出家者)이던 재가자(在家者)이던 보살행(菩薩行)을 몸소 실천수행(實踐修行)하는 자만이 진불자(眞佛子)요 성불(成佛)을 향한 진보살(眞菩薩)일 뿐 형식이나 외모로 진불자(眞佛子) 진보살(眞菩薩)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