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인간(人間)의
구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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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8 10:00
三. 그러면 인간(人間)의 본질(本質) 즉(即) 불성(佛性)이란 무엇인가? 여기에 대(對)하여는 모든 경전(經典)에 불성(佛性)에 대(對)한 교설(敎說)이 있지만 불성(佛性)의 설명(說明)에는 열반경(涅槃經)에 의(依)함이 가장 적절(適切)하다고 산승(山僧)은 생각한다. 이 경전(經典)에 기술(記述)한 일부(一部)를 간단(簡單)히 소개(紹介)한다면, 먼저 우리 인간자체(人間 自體)에 한(限)하여 불성(佛性)이 있다고 할 경우(境遇), 그 불성은 사람의 어느 부분(部分), 어느 곳에 있는가.하는 의문(疑問)이 날 것이다. 경(經)에는 말씀 하시기를 불성(佛性은 우리들의 신체(身體)속에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 신체(身體)의 어느 부분(部分)에 있는가 심문(尋問)한즉 오온(五蘊) 즉(即) 신체(身體)를 구성(構成)하고 있는 색(色= 肉身). 수(受 = 感覺). 상(想 = 表象). 행(行 = 意志). 식(識 = 認識) 등 오종(五種)의 소내(素內)에 있다고 답(答)하시었다. 그러면 이 오종(五種)의 요소중(要素中) 어느 부분(部分)에 있는가 하니 여기에 대(對)하여는 아무 구체적(具體的)인 교시(敎示)가 없고 경전제34(經典第三四)에 공후(箜篌 = 十二絃)의 수미(首尾)가 굽은 금(琴)에 비유(比喩)하여 불성(佛性)의 유무(有無) 및 위치(位置)에 대(對)하여 설술(說述)하고 있다. 즉(即) 기(其) 말씀 내용(內容)인즉 이 악기(樂器)에서는 아주 아름다운 음색(音色)이 나오는데 그 음색(音色)은 현(絃)에서 나오는지 또는 다른 부분(部分)에서 나오는지 이 공후(箜篌)를 분해(分解)하여 탐구(探究)하여도 그 어느 부분(部分)에서도 기(其) 아름다운 음색(音色)은 발견(發見)되지 않했으며 다시 기각(其各) 부분품(部分品)을 조립(組立)하여 연주(演奏)하니 원래(元來)의 음색(音色)이 출현(出現)하였다. 음색(音色)은 공후(箜篌)에서 나옴은 분명(分明)하며 그 음색(音色)이 공후(箜篌)속에 있음이 명백(明白)하니 있다고 하면 어느 부분(部分)에 있는가 하는 의문(疑問)에 대답(對答)해 야 할 것인가? 그 음색(音色)은 분해(分解)하여 본즉 그 어느 부분(部分)에도 존재(存在)하지 않는다. 그러면 없는 것일까? 그러나 다시 조립(組立)하여 보니 음색(音色)이 나오니, 그러면 있는 것일까? 따라서 공후(箜篌)에는 음색(音色)이 있다고 할 수도 있고, 없다고 할 수도 있다. 유무(有無) 일방(一方)에 치우쳐 주장(主張)하면 음색(音色)을 상실(喪失)할 것이다. 불성(佛性)도 이와같아서 중생(衆生)에게는 불성(佛性)이 있다. 그런데 있다고 하면 개체(個體)를 오온(五蘊)으로 분해(分解)하여 그 어느 부분(部分)에 있는가를 검토(檢討)해야 할 것이다. 그렇케 할 경우(境遇) 기(其) 어느 부분(部分)에도 불성(佛性)은 존재(存在)하지 않는다. 그러면 개체(個體)에는 존재(存在)하지 않는 것이까.? 오온(五蘊)으로부터 구성(構成)된 개체(個體)에 불성(佛性)이 없는 것이 아니고 명확(明確)히 존재(存在)하고 있다. 그러나 공후(箜篌)의 음색(音色)과 같이 유무(有無) 어느 변(便)에 집착(執着)하면 불성(佛成)은 파악(把握)할 수 없다. 이같이 불성(佛性)은 있다고도 할 수 있고 없다고도 할 수 있다. 이와같이 그 불성(佛性)은 지금 살아있는 자기(自己)의 신체(身體)속에 가지고 있으나 볼 수도 없고 감지(感知)할 수도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여기에 대(對)하여 경전(經典)에는 확실(確實)하게 답(答)하기를 "수(數)많은 번뇌(煩惱)의 구름에 덮혀있기 때문이라,, 고 그리고 정당(正當)한 지도자(指道者 = 善知識)의 지도(指道)에 의(依)하여 수행(修行)하고 번뇌(煩惱)를 제거(除去)하면 반드시 불성(佛性)을 보고 회득(會得)할 수 있다고 하였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