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러한 사실
구경사
0
151
04.29 20:16
그러나 이러한 사실(史實)을 어찌하여 나는 허강(虛講) 날조된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인가.그것은 다음에 열거하는 이유에 의하여 틀림 없다고 할 만하기 때문이다.
첫째 원칙(圓測)의 유식사상(唯識思想)의 내용이 규기(窺基)의 자은종파(慈恩宗派)와는 서로 학설에 있어서 대립하였던 것이 사실인 이상, 원칙(圓測)의 유식사상(唯識思相)이 규가(窺基)에 대한 현장(玄奘)의 강(講)을 듣고 그 덕으로 이루워진 것이 아님을 알수 있다. 원칙(圓測)의 유식사상(唯識思想)을 전승(傳承)한 것은 신라(新羅)의 도증(道證)이요, 다시 그 계통을 이은 것이 대현(大賢)이다. 유식(唯識)에 관한 원칙(圓測)의 저술로는 성유식론소(成唯識論疏)10권(十卷), 20유식소(二十唯識疏)2권(二卷), 그히고 유식사상(唯識思想)의 연원(淵源)을 연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해심밀경소(解深密經疏)10권(十卷)이 있었으나 지금은 해심밀경소(解深密經疏)가 제1권(第一卷)에서 9권(九卷)까지만 남아 있을 뿐 성유식론소(成唯識論疏)도 20유식론소(二十唯識論疏)도 전(傳)하지 않는다. 도증(道證)이 지은 성유식론요집(成唯識論要集)14권(十四卷)도 찾아볼 길이 없다. 오직 대현(大賢)이 찬술(纂述)한 성유식론학기(成唯識論學記)8권(八卷)이 그나마 외국(外國)에서 간행된 문헌 속에 들어 겨우 전(傳)하고 있다. 그러니 만큼 서장(西藏)에서 발견된 서장어역(西藏語譯) 원칙(圓測)의 저술(著述)이 전적 으로 탐색 연구되는 날에는 모르되 아직은 원칙(圓測)이나 도증(道證)의 유식사상(唯識思想)을 직접 그들 자신(自身)의 저술을 통하여 충분히 알 길이 없다. 그것에 반하여 규기(窺基)가 역출(譯出)한 성유식론(成唯識論)10권(十卷)을 바롯하여 그가 찬술(纂述)한 성유식론술기(成唯識論述記)20권(二十卷) 성유식론장중추요(成唯識論掌中樞要)4권(四卷)은 그대로 고스란히 전하고 있으며, 뿐만 아니라 그의 제자 혜소(慧沼)의 성유식론요의등(成唯識論了義燈)13권(十三卷)도, 혜소(慧沼)의 뒤를 이은 지주(智周)의 성유식론연비(成唯識論演秘)14권(十四卷)도 같이 전(傳)해지고 있다. 혜소(慧沼)의 성유식론요의등(成唯識論了義燈)은 자은종(慈恩宗)에 있어서 정통적 위치를 접하는 중요한 저술인 것 오로지 규기(窺基)의 사상(思想)을 준봉(遵奉)하여 그와 일치하지 않는 원칙(圓測)과 도증(道證)의 설(說)을 공격 배제하려는 것이 주목표로 되어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자기들의 비위에 맞지 않는 것은 백 수십여 개소에 걸처 세세히 척결(剔抉)하여 반드시 금위불이(今謂不爾)니 공불당(恐不當)이니 공불이(恐不爾)니 차설역비(此說亦非)니 이미필연(理未必然)이니 역미진리(亦未盡理)니 차역불허(此亦不許)니 심지어 시망출과(是妄出過) 불선인명야(不善因明也)라고 하여 깍아내리다 못해 논리(論理)가 틀렸다는 식으로까지 헐뜯고 있는 것이다. 이론의 내용에 관한 시비(是非)는 별도로 흑백(黑白)이 가려져야 할 일이나 여하간 학설(學說)이 서로 달랐섰음은 역력히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다. 한편으로는 도청하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다르다고 나무라고 있었다. 현장(玄奘)의 설을 답습(踏襲)하였다기에는 너무나 차이(差異)가 많다고 그들 스스로가 자인함이 틀림이 없었다. (계속)
첫째 원칙(圓測)의 유식사상(唯識思想)의 내용이 규기(窺基)의 자은종파(慈恩宗派)와는 서로 학설에 있어서 대립하였던 것이 사실인 이상, 원칙(圓測)의 유식사상(唯識思相)이 규가(窺基)에 대한 현장(玄奘)의 강(講)을 듣고 그 덕으로 이루워진 것이 아님을 알수 있다. 원칙(圓測)의 유식사상(唯識思想)을 전승(傳承)한 것은 신라(新羅)의 도증(道證)이요, 다시 그 계통을 이은 것이 대현(大賢)이다. 유식(唯識)에 관한 원칙(圓測)의 저술로는 성유식론소(成唯識論疏)10권(十卷), 20유식소(二十唯識疏)2권(二卷), 그히고 유식사상(唯識思想)의 연원(淵源)을 연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해심밀경소(解深密經疏)10권(十卷)이 있었으나 지금은 해심밀경소(解深密經疏)가 제1권(第一卷)에서 9권(九卷)까지만 남아 있을 뿐 성유식론소(成唯識論疏)도 20유식론소(二十唯識論疏)도 전(傳)하지 않는다. 도증(道證)이 지은 성유식론요집(成唯識論要集)14권(十四卷)도 찾아볼 길이 없다. 오직 대현(大賢)이 찬술(纂述)한 성유식론학기(成唯識論學記)8권(八卷)이 그나마 외국(外國)에서 간행된 문헌 속에 들어 겨우 전(傳)하고 있다. 그러니 만큼 서장(西藏)에서 발견된 서장어역(西藏語譯) 원칙(圓測)의 저술(著述)이 전적 으로 탐색 연구되는 날에는 모르되 아직은 원칙(圓測)이나 도증(道證)의 유식사상(唯識思想)을 직접 그들 자신(自身)의 저술을 통하여 충분히 알 길이 없다. 그것에 반하여 규기(窺基)가 역출(譯出)한 성유식론(成唯識論)10권(十卷)을 바롯하여 그가 찬술(纂述)한 성유식론술기(成唯識論述記)20권(二十卷) 성유식론장중추요(成唯識論掌中樞要)4권(四卷)은 그대로 고스란히 전하고 있으며, 뿐만 아니라 그의 제자 혜소(慧沼)의 성유식론요의등(成唯識論了義燈)13권(十三卷)도, 혜소(慧沼)의 뒤를 이은 지주(智周)의 성유식론연비(成唯識論演秘)14권(十四卷)도 같이 전(傳)해지고 있다. 혜소(慧沼)의 성유식론요의등(成唯識論了義燈)은 자은종(慈恩宗)에 있어서 정통적 위치를 접하는 중요한 저술인 것 오로지 규기(窺基)의 사상(思想)을 준봉(遵奉)하여 그와 일치하지 않는 원칙(圓測)과 도증(道證)의 설(說)을 공격 배제하려는 것이 주목표로 되어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자기들의 비위에 맞지 않는 것은 백 수십여 개소에 걸처 세세히 척결(剔抉)하여 반드시 금위불이(今謂不爾)니 공불당(恐不當)이니 공불이(恐不爾)니 차설역비(此說亦非)니 이미필연(理未必然)이니 역미진리(亦未盡理)니 차역불허(此亦不許)니 심지어 시망출과(是妄出過) 불선인명야(不善因明也)라고 하여 깍아내리다 못해 논리(論理)가 틀렸다는 식으로까지 헐뜯고 있는 것이다. 이론의 내용에 관한 시비(是非)는 별도로 흑백(黑白)이 가려져야 할 일이나 여하간 학설(學說)이 서로 달랐섰음은 역력히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다. 한편으로는 도청하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다르다고 나무라고 있었다. 현장(玄奘)의 설을 답습(踏襲)하였다기에는 너무나 차이(差異)가 많다고 그들 스스로가 자인함이 틀림이 없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