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병사(病邪)로 부모(父母)를
구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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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6 09:51
네가 병사(病邪)로 부모(父母)를 들볶아 죄를 많이 지었으니 모든 죄를 이 자리에서 참회(懺悔)하고 야속한 아무 한(恨)을 남기지 말라. 오직 즐거운 마음으로 내 앞에서 곱게 죽어라. 그리하면 너의 영혼을 내가 극락 세계로 이끌어 보내 줄 것이다. 그렇지만 네가 무슨 복(福)으로 내 앞에서 죽겠느냐. 내가 나간 뒤라도 좋으니 곱게만 죽어라. 사람은 남녀 노소를 막론하고 일생 일사(一生一死)를 면할 수 없는 것이니 한 번 죽지 두 번 죽겠느냐? 감나무에 서는 선감도 떨어지고 익은 감도 떨어지는 것이니, 인생이라고 어찌 늙어서만 죽으란 법이 있겠느냐. 생사 왕래(生死往來)가 천리(天理)인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조용히 죽어라. 너의 부모가 공양미 3백 석과 돈 10만 냥을 우리 절에 시주하여 무너져가는 절을 중건하게 되었으니 너는 죽더라도 큰 공덕(功德)을 지은 것이다. 우리 절에는 참선납자(參禪衲子)가 백여 명이나 되니 한두 사람의 도승이 나지 않겠느냐 ? 그러면 네가 죽더라도 큰 복을 지은 것이니 아무 미련을 남기지 말고 곱게 곱게 죽어라.,, 하더니 일주향(一柱香)을 피워 놓고, "이미 왔던 길이니까 "반야심경(般若心經),, 이나 한 번 읽고 가지!,, 하며 무어라고 들리지 않는 소리로 중얼거리더니, "나는 바빠서 가니 그리 아시오.,, 하고는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람같이 가 버리고 말았다. 그녀의 부모는 이 광경을 보고 기가 막혀서 어안이 벙벙하여 아무 말도 못하였다. 마치 귀신에게 홀린 것도 같고 불시에 불한당에게 도둑을 맞은 것과도 같았다. 처녀도 선사의 법문(法門)을 듣더니 모든 것을 체념한 듯이 눈물을 흘리고 돌아눕고 만다. 그녀의 부모는 이것을 보고 더욱 안타까왔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녀가 하룻밤을 지나더니 미음과 죽을 먹고 3일이 지나 서는 밥을 먹고 일 주일이 지나서는 병이 완쾌되고 말았다. 이것은 그 처녀가 죽지 않고 살아나려고만 속을 태우고 기를 쓰다가, 모든 것을 체념하고 지금 죽어도 좋다는 마음을 가지고 안심하고 있었기 때문에 살아난 것이니, 사실과 기대가 어긋나는 것을 심리적으로 해결한 실례이다. 또 같은 임제종(臨濟宗) 승려로서 선애 선사(仙崖禪師)라는 분이 있었다.이 분은 일본(日本)의 선승(禪僧)으로 가장 일화가 많은 분이다. 제치와 총명이 선천적으로 뛰어난 가운데 오묘한 선지(禪智)를 깨달은 스님이었는데, 어느 해 정월 초였다. 거사(居士) 한 사람이 송구 영신의 신년 세배(新年歲拜)를 온 일이 있었다. 그는 선사(禪師)앞에 좋은 흰 비단을 한 필 내놓고 금년 중에 행복이 될 만한 축송(祝頌)을 하나 써 달라는 것이다. 선사는 이에 응하여 붓과 벼루를 갖추어 놓고, "아비 죽고 자식 죽고 손자 죽어라.,, 이 밖에 다시 경사가 없느니라. (부사 = 父死, 자사 = 子死, 손사 = 孫死, 차외 = 此外, 갱무경사 = 更無慶事).,, 이러한 글을 써 주었다. 이러한 글을 받은 거사는 하도 귀가 막혀서 의아심을 품고 물었다. "스님, 스님은 소사(小士)에게 무슨 원한과 감정이 있습니까?,, 스님께서 "감정은 무슨 감정이야, 나는 거사에게 대해서 아무 감정이 없네.,, 거사가 "그러시다면 어찌하여 금년 내에 우리 가족이 몰사하라고, 부자손(父子孫)이 다 죽는 것이 경사란 글을 써 주십니까?,, 스님께서 "허, 허, 그것은 자녜가 모르는 말일세, 내가 세상 사람을 살펴보니 아들과 손자가 먼저 죽는 참칙(慘恜)을 보는 사람이 너무 많네그려, 그리고 보니 손재(損財)를 보는 것보다 인명이 순차(順次)로 죽는 것이 행복이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자네 가정은 언제든지 역순(逆順)의 흉사(凶事)가 없이 3 대가 순차로 세상을 떠나란 .말일세 .,, "알았습니다. 과연 그렇습으니다.,, 거사는 이에 납득이 되어 사례를 하고 그 글씨를 가전(家傳)의 보물(寶物)로서 진장(珍藏)한 일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생 무상의 종교미(宗敎味)도 있지마는 인생을 바로본 생활(生活) 철학(哲學)의 진리(眞理)도 갖추어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