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스스로 지은 악업(惡業)의
구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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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3 11:25
ㅁ. 내가 스스로 지은 악업(惡業)의 재앙(災殃)은 이 세상 어디에 숨어도 피할 수가 없다.
ㅁ. 그러므로 옛글에 이르기를 "오이를 심으면 오이를 얻고, 팥을 심으면 팥을 얻는다. 하늘의 그물이 넓고도 빽빽하여 그 그물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하였고, 장자(莊子)는 말하기를 "악(惡)을 행하고도 혹 복을 받는 수가 있다면 사람은 그것을 어찌하지 못하지만 하늘이 그것을 반드시 벌한다.,, 하였다. 부처님의 말씀에도 "제가 지은 죄는 반드시 제가 다 받는다.,, 고 하였으니 비록 사람의 눈을 피하여 악을 감추려 해도 신명(神明)의 눈은 피할 수가 없어 반드시 그 악에 대한 재앙을 받게 되는 것이다.
ㅁ. 길손이여, 나그네여, 그대는 무엇을 찾고 있는가. 부처님의 참 모습을 찾으려 하시거던 먼저 당신의 참 모습을 마음 속에서 법계성(法界性)을 보십시오.
ㅁ. 내가 좋은 것은 남도 좋아하고 내가
싫은 것은 남도 싫어한다. 하물며 죽음에 있어서랴. 이 세상의 죄란 다른 것이 아니라 내가 싫은 것을 남에게 하는 일이다.
ㅁ. 생명(生命)이 붙어 있는 모든 것은 손(損)되는 것을 싫어한다. 자기 것을 빼앗겨도 손이오, 남에게 헐뜯음을 덩해도 손이오,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받는것도 손이오, 즐거움을 빼앗고 괴로움을 안겨 주는 것도 손이다. 그보다도 가장 큰 손은 자기 생명을
빼앗기는 손이 가장 큰 손이다. 세상에 생명이 있는 만물은 자기 생명 잃는 것을 가장 슬퍼하고, 무서워한다. 자기의 마음을 미루어 남에게 손(損)되게 하지 말 것이며 특히 남의 생명을 죽이거나 죽도록 하지 말아야 한다.
ㅁ. 그럴 만한 이유가 없거던 개미 한 마리의 복숨도 소중히 여겨 죽이지 말라. 스스로 청결한 몸을 가져서 마음이 고요하고 행실이 바르며 모든 생명(生命)에도 자비심(慈悲心)을 베풀면 그는 바로 "바라문(婆羅門)이요,, "사문(沙門),,이요 "비구(比丘),,이다.
ㅁ. 이 세상 우주(宇宙) 안에 꽉 차 있는 모든 생물(生物)은 그것이 크고 작든 목숨의 소중함은 마찬가지여서 살기를 원하고 죽기를 싫어한다. 따지고 보면 살았다는 것이나 죽음이나 매 한 가지 결과적으로 공(空)이지만, 그리고 무(無)에서 나와 무(無)로 돌어가는 것이 천지(天地) 만물(萬物)이자만, 생(生)이 자속되는 순간까지는 삶에 대한 애착은 간절하다. 가을 풀에 매달린 이슬과 같은 삶이기에 그 누구에게도 해침을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살다가 자연스럽게 돌아가야 할 것이다.
ㅁ. 마음은 모든 일의 근본이다. 마음 속에 착한 일을 생각하면 그 말과 행동도 착해지고, 마음 속에 악한 일을 생각 하면 그 말과 헁동도 악해지느니라.
ㅁ, 착한 말과 착한 행동은 복(福)을 부르고 악한 말, 악한 행동은 재앙을 부른다. 묻노니 그대들은 복을 원하는가? 재앙을 원하는가? 복과 재앙은 그대들 마음대로 취해지는 일인데도 어찌하여 복은 얻기 어렵고 재앙은 쉽게 이른다 탄식 하는가.
ㅁ. 등잔 맡이 어둡고 숫가락은 밥과 국물 맛을 모른다. 그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은 평생 동안을 현자의 위대함을 모르고 살아가니 이 어찌 안타깝지 않을까.
ㅁ. 남의 허물을 꾸짓기에 앞서 내 자신부터 허물이 없는가를 살퍼보자. 급한 것은 내 허물 고치는 일인데 하필 남의 허물에 신경을 쓰는가?
ㅁ. 남의 허물을 탓하지 않으면 설사 자기에게 허물이 있더라도 크게 흉볼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자기에게 뚜렀한 허물이 있는데도 남의 허물을 탓한다면 마치 자기 얼굴에 더러운 똥을 묻히고 남의 얼굴에 묻은 먼지를 흉보는 것과 같다. 거울 앞에 자기 얼굴을 비추어 얼굴에 때가 묻었는가 조심한 뒤에 외출을 하듯이 자기 자신을 살펴 허물이 있는 가를 알아보라. 내가 먼저 허물을 고친 뒤에 남의 허물을 일깨워 준다면 그는 나를 스승으로 여길 것이다.
옛 시조 하나를 소개 하겠다. "세상 사람들은 입들만 성하여서 제 허물 전혀 잊고 남의 허물 말하고, 남의 허물 말하지 말고 제허물 을 고치고져,, "등잔 밑 어둡다.,, 는 속담처럼 자기 자신의 잘못 깨닫기가 남을 살피는 것보다 어러운 탓인지 모르겠다.
ㅁ. 악(惡)하게 백년을 사는 것보다. 바르게 하루를 사는 것이 더 보람 있는 삶이다.
ㅁ. 오래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사는 동안 무엇을 꺄닫고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사람의 도리(道理)를 바르게 알아서 법(法)답게 살 수만 있다면 이것은 참으로 삶다운 삶을 누렸다 할 것이다.
ㅁ. 어리석은 사람은 악을 짓고도 스스로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 때문에 점점 악의 구렁에 뻐져들어가고, 제 스스호 지은 악업에서 일어나는 불길에 제몸을 태우며 괴로워 한다.
ㅁ. 죄인이 그 죄에 대한 벌을 받기 전에는 죄가 얼마나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가를 깨닫지 못한다. 악을 짓기를 좋아하여 악의 두러움을 모르는 서람은 그 악에 대한 보(報)를 받기 전에는 그것이 악인지조차 깨닫지 못한다. 악을 쌓는 것이란 제 몸에 거듭 기름을 바르는 것 같아서 한번 불길이 붙기 시작하년 활활 타올라 꺼지지 아니하여 제 몸을 재로 만들어버린다. 모두 제 스스로 만든 것이지 누가 그렇게 해 주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제 스스로 불태우는 따위의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계속)
ㅁ. 그러므로 옛글에 이르기를 "오이를 심으면 오이를 얻고, 팥을 심으면 팥을 얻는다. 하늘의 그물이 넓고도 빽빽하여 그 그물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하였고, 장자(莊子)는 말하기를 "악(惡)을 행하고도 혹 복을 받는 수가 있다면 사람은 그것을 어찌하지 못하지만 하늘이 그것을 반드시 벌한다.,, 하였다. 부처님의 말씀에도 "제가 지은 죄는 반드시 제가 다 받는다.,, 고 하였으니 비록 사람의 눈을 피하여 악을 감추려 해도 신명(神明)의 눈은 피할 수가 없어 반드시 그 악에 대한 재앙을 받게 되는 것이다.
ㅁ. 길손이여, 나그네여, 그대는 무엇을 찾고 있는가. 부처님의 참 모습을 찾으려 하시거던 먼저 당신의 참 모습을 마음 속에서 법계성(法界性)을 보십시오.
ㅁ. 내가 좋은 것은 남도 좋아하고 내가
싫은 것은 남도 싫어한다. 하물며 죽음에 있어서랴. 이 세상의 죄란 다른 것이 아니라 내가 싫은 것을 남에게 하는 일이다.
ㅁ. 생명(生命)이 붙어 있는 모든 것은 손(損)되는 것을 싫어한다. 자기 것을 빼앗겨도 손이오, 남에게 헐뜯음을 덩해도 손이오,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받는것도 손이오, 즐거움을 빼앗고 괴로움을 안겨 주는 것도 손이다. 그보다도 가장 큰 손은 자기 생명을
빼앗기는 손이 가장 큰 손이다. 세상에 생명이 있는 만물은 자기 생명 잃는 것을 가장 슬퍼하고, 무서워한다. 자기의 마음을 미루어 남에게 손(損)되게 하지 말 것이며 특히 남의 생명을 죽이거나 죽도록 하지 말아야 한다.
ㅁ. 그럴 만한 이유가 없거던 개미 한 마리의 복숨도 소중히 여겨 죽이지 말라. 스스로 청결한 몸을 가져서 마음이 고요하고 행실이 바르며 모든 생명(生命)에도 자비심(慈悲心)을 베풀면 그는 바로 "바라문(婆羅門)이요,, "사문(沙門),,이요 "비구(比丘),,이다.
ㅁ. 이 세상 우주(宇宙) 안에 꽉 차 있는 모든 생물(生物)은 그것이 크고 작든 목숨의 소중함은 마찬가지여서 살기를 원하고 죽기를 싫어한다. 따지고 보면 살았다는 것이나 죽음이나 매 한 가지 결과적으로 공(空)이지만, 그리고 무(無)에서 나와 무(無)로 돌어가는 것이 천지(天地) 만물(萬物)이자만, 생(生)이 자속되는 순간까지는 삶에 대한 애착은 간절하다. 가을 풀에 매달린 이슬과 같은 삶이기에 그 누구에게도 해침을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살다가 자연스럽게 돌아가야 할 것이다.
ㅁ. 마음은 모든 일의 근본이다. 마음 속에 착한 일을 생각하면 그 말과 행동도 착해지고, 마음 속에 악한 일을 생각 하면 그 말과 헁동도 악해지느니라.
ㅁ, 착한 말과 착한 행동은 복(福)을 부르고 악한 말, 악한 행동은 재앙을 부른다. 묻노니 그대들은 복을 원하는가? 재앙을 원하는가? 복과 재앙은 그대들 마음대로 취해지는 일인데도 어찌하여 복은 얻기 어렵고 재앙은 쉽게 이른다 탄식 하는가.
ㅁ. 등잔 맡이 어둡고 숫가락은 밥과 국물 맛을 모른다. 그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은 평생 동안을 현자의 위대함을 모르고 살아가니 이 어찌 안타깝지 않을까.
ㅁ. 남의 허물을 꾸짓기에 앞서 내 자신부터 허물이 없는가를 살퍼보자. 급한 것은 내 허물 고치는 일인데 하필 남의 허물에 신경을 쓰는가?
ㅁ. 남의 허물을 탓하지 않으면 설사 자기에게 허물이 있더라도 크게 흉볼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자기에게 뚜렀한 허물이 있는데도 남의 허물을 탓한다면 마치 자기 얼굴에 더러운 똥을 묻히고 남의 얼굴에 묻은 먼지를 흉보는 것과 같다. 거울 앞에 자기 얼굴을 비추어 얼굴에 때가 묻었는가 조심한 뒤에 외출을 하듯이 자기 자신을 살펴 허물이 있는 가를 알아보라. 내가 먼저 허물을 고친 뒤에 남의 허물을 일깨워 준다면 그는 나를 스승으로 여길 것이다.
옛 시조 하나를 소개 하겠다. "세상 사람들은 입들만 성하여서 제 허물 전혀 잊고 남의 허물 말하고, 남의 허물 말하지 말고 제허물 을 고치고져,, "등잔 밑 어둡다.,, 는 속담처럼 자기 자신의 잘못 깨닫기가 남을 살피는 것보다 어러운 탓인지 모르겠다.
ㅁ. 악(惡)하게 백년을 사는 것보다. 바르게 하루를 사는 것이 더 보람 있는 삶이다.
ㅁ. 오래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사는 동안 무엇을 꺄닫고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사람의 도리(道理)를 바르게 알아서 법(法)답게 살 수만 있다면 이것은 참으로 삶다운 삶을 누렸다 할 것이다.
ㅁ. 어리석은 사람은 악을 짓고도 스스로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 때문에 점점 악의 구렁에 뻐져들어가고, 제 스스호 지은 악업에서 일어나는 불길에 제몸을 태우며 괴로워 한다.
ㅁ. 죄인이 그 죄에 대한 벌을 받기 전에는 죄가 얼마나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가를 깨닫지 못한다. 악을 짓기를 좋아하여 악의 두러움을 모르는 서람은 그 악에 대한 보(報)를 받기 전에는 그것이 악인지조차 깨닫지 못한다. 악을 쌓는 것이란 제 몸에 거듭 기름을 바르는 것 같아서 한번 불길이 붙기 시작하년 활활 타올라 꺼지지 아니하여 제 몸을 재로 만들어버린다. 모두 제 스스로 만든 것이지 누가 그렇게 해 주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제 스스로 불태우는 따위의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