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韓國佛敎)의 계율사상(戒律思想)
구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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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9 09:22
한국불교(韓國佛敎)의 계율사상(戒律思想)
1. 고유문화(固有文化)와 불교(佛敎)
우리 고유문화의 기본적인 성격을 고대 민족사회에서 찾아본다면 대체로 일륜적(人倫的)인 요소와 함께 종교적(宗敎的)인 의미에서 짚어볼 수 있다. 혈연(血緣)을 유대로 하는 하나의 사회집단을 이루면 살았다는 점에서 인륜적이라 할 것이며, 조상신(祖上神 = 단군)을 섬기며 제(祭)지내는 등 천신(天神)이나 자연신(自然神)을 숭상하는 생홯을 하였다는 점에서는 종교적(宗敎的)이라 할 수 있다. 단군설화에 보면 환웅(桓雄)은 무리 3천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神壇樹)밑에 내려와 신씨(神市를 정했으며 그는 바람과 비와 구름을 각각 맡아서 다스리는 풍사(風師). 우사(雨師). 운사(雲師) 등을 거느리고 곡식과 사람의 수명(壽命)과 질병(疾病) 및 선악(善惡)을 주관 하며 모든 인간의 3백여의 갖가지 일을 관장하며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敎化)하였다 한다. 또 고조선(古朝鮮) 때는 이른바 팔조법금(八條法禁)을 제정하여 사람을 죽인자는 사형에 처하고, 남을 상해(傷害)하면 곡식으로 대신하여 위적(慰籍)했으며, 도둑질을 하면 잡혀가서 사역(使役)하거나 벌금을 내도록 되어 있었다. 우리 겨레는 이와같이 먼 옛옛날부터 윤리생활을 영위하는 한편으로 천신(天神)인 하늘님을 소박하게 신앙하는 종교생활을 하면서 살았다. 그렇다해서 그것이 종교철학적(宗敎哲學的)으로 설명되는 경계는 아니였다. 불교(佛敎)는 바로 이러한 문화풍토(文化風土) 속으로 뛰어들어 재래적인 고대문화에 접촉하면서 서로 혼융되는 가운데 서서히 뿌리 내렸으며, 불교는 어느덧 고대적 미개(未開)를 파헤쳐 인간이 살아가는의미를 일깨우는 등 겨레의 문화활동을 일으키며 윤리생활 을 보다 합리적으로 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흔히 말하는 민족문화(民族文化)라고 하느 것이 다만 민족 고유의 것만을 고집하는 의미가 아니라 그 민족으로 하여금 장구(長久)한 시간과 민족구성원(民族構成員) 대다수의 창조력에 의해 창출(創出)해낸 소산(所産)이라 할때, 지금으로부터 1천 6백년 전에 이 땅에 전래(傳來)되어 고유문화와의 융화 속에서 겨레의 의취(意趣)와 더불어 문화활동을 주도(主導)해온 불교는 실로 민족문화의 창조적 주체라해서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문화유산(文化遺産)의 태반이 불교문화재(佛敎文化財)라는 량적(量的)인 면에서도 수긍할 수 있지만, 그 불교문화재의 태반이 또한 민중들의 소박한 생활상(生活相)과 함께 중생심(衆生心)이 그대로 묘사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더해진다. 근엄한 자용(姿容)의 고구려 불상(佛像)이 그렇고 파안대소(破顔大笑)하는 백제불(百濟佛)에서도 그러함을 보며 또 서라벌 옛 사지(寺址)에서 발굴된 여인상(女人像)의 와당(瓦當)에서도 보지않는가. 오늘의 불교가 큰 보람과 긍지와 함께 도리어 외경(畏敬)해야 할지언정 막연히 자랑으로 삼아 아만(我慢)할 바는 아닐 것이다. (계속)
1. 고유문화(固有文化)와 불교(佛敎)
우리 고유문화의 기본적인 성격을 고대 민족사회에서 찾아본다면 대체로 일륜적(人倫的)인 요소와 함께 종교적(宗敎的)인 의미에서 짚어볼 수 있다. 혈연(血緣)을 유대로 하는 하나의 사회집단을 이루면 살았다는 점에서 인륜적이라 할 것이며, 조상신(祖上神 = 단군)을 섬기며 제(祭)지내는 등 천신(天神)이나 자연신(自然神)을 숭상하는 생홯을 하였다는 점에서는 종교적(宗敎的)이라 할 수 있다. 단군설화에 보면 환웅(桓雄)은 무리 3천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神壇樹)밑에 내려와 신씨(神市를 정했으며 그는 바람과 비와 구름을 각각 맡아서 다스리는 풍사(風師). 우사(雨師). 운사(雲師) 등을 거느리고 곡식과 사람의 수명(壽命)과 질병(疾病) 및 선악(善惡)을 주관 하며 모든 인간의 3백여의 갖가지 일을 관장하며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敎化)하였다 한다. 또 고조선(古朝鮮) 때는 이른바 팔조법금(八條法禁)을 제정하여 사람을 죽인자는 사형에 처하고, 남을 상해(傷害)하면 곡식으로 대신하여 위적(慰籍)했으며, 도둑질을 하면 잡혀가서 사역(使役)하거나 벌금을 내도록 되어 있었다. 우리 겨레는 이와같이 먼 옛옛날부터 윤리생활을 영위하는 한편으로 천신(天神)인 하늘님을 소박하게 신앙하는 종교생활을 하면서 살았다. 그렇다해서 그것이 종교철학적(宗敎哲學的)으로 설명되는 경계는 아니였다. 불교(佛敎)는 바로 이러한 문화풍토(文化風土) 속으로 뛰어들어 재래적인 고대문화에 접촉하면서 서로 혼융되는 가운데 서서히 뿌리 내렸으며, 불교는 어느덧 고대적 미개(未開)를 파헤쳐 인간이 살아가는의미를 일깨우는 등 겨레의 문화활동을 일으키며 윤리생활 을 보다 합리적으로 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흔히 말하는 민족문화(民族文化)라고 하느 것이 다만 민족 고유의 것만을 고집하는 의미가 아니라 그 민족으로 하여금 장구(長久)한 시간과 민족구성원(民族構成員) 대다수의 창조력에 의해 창출(創出)해낸 소산(所産)이라 할때, 지금으로부터 1천 6백년 전에 이 땅에 전래(傳來)되어 고유문화와의 융화 속에서 겨레의 의취(意趣)와 더불어 문화활동을 주도(主導)해온 불교는 실로 민족문화의 창조적 주체라해서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문화유산(文化遺産)의 태반이 불교문화재(佛敎文化財)라는 량적(量的)인 면에서도 수긍할 수 있지만, 그 불교문화재의 태반이 또한 민중들의 소박한 생활상(生活相)과 함께 중생심(衆生心)이 그대로 묘사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더해진다. 근엄한 자용(姿容)의 고구려 불상(佛像)이 그렇고 파안대소(破顔大笑)하는 백제불(百濟佛)에서도 그러함을 보며 또 서라벌 옛 사지(寺址)에서 발굴된 여인상(女人像)의 와당(瓦當)에서도 보지않는가. 오늘의 불교가 큰 보람과 긍지와 함께 도리어 외경(畏敬)해야 할지언정 막연히 자랑으로 삼아 아만(我慢)할 바는 아닐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