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외도란 본래
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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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6 08:20
31
기심 시천마 불기심 시음마 혹기혹
起心은 是天魔요 不起心은 是陰魔며 或起或
불기 시번뇌마 아정법중
不起는 是煩惱魔어니 我正法中엔
본무여시사
本無如是事니라
※일어나는 마음을 천마라 하고 일지 않음을 음마라 하며 혹 일기도 하고 일지 않기도 하는 것을 번뇌마라 하거니와, 그러나 우리 정법 가운데는 본래 이같은 일이 없다.
※ 해의(解義) ※
사마외도란 본래 그 종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수행하는 이가 수행중에 자칫정념을 매각함을(失念) 틈타, 물결일어나듯 여러갈래 파(派)가 생겨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마의 경계란 어디까지나 꿈속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지라 깨어있는 사람에게는 본래 그 흔적도 없는 것이다.
32
공부 약타성일편즉 종금생 투불득
工夫가 若打成一片則 縱今生에 透不得 이라도
안광낙지시 불위악업 소견
眼光落地時에 不爲惡業의 所牽이라 하리라
※공부가 타성일편을 이룬다면 비록 금생에 사무치지 못하더라도 마지막 눈 감을 때 악업에 끌리지는 않을 것이다.
※ 해의(解義) ※
이것은 공부하는 사람중에 속효심(速效心)에 매달려 퇴굴(退屈)하려는 이들을 각별히 위로하는 말씀이다. 사람이 목숨이 다하여 안광(眼光)이 땅에 떨어질 때에는 한평생 지어온 선악업(善惡業)의 결과가 다 나타나 보이는데 이때를 당해 비록 공부를 사무치지 못했다 하더라도 악업(惡業)에 끌려가지 않게 되는 것은 반야(般若)의 힘이 그만큼 뛰어나기 때문이다.
#33
어법 유친절반조지공 자긍점두자
於法에 有親切返照之功하야 自肯點頭者라
시유어화분
始有語話分하리라
※저 법에 진절히 도리켜 살피는 노력을 쌓아 마침내 스스로 긍정하고 머리를 끄덕일수 있어야 비로소 한마디 이를 분수(자격)가 있으리라.
※ 해의(解義) ※
이것은 논리만을 즐겨 배우려는 이(學語辈)들을 경책하는 것이다. 반조(返照)는 본각(本覺이 자아(自我)요 시각(始覺)은 법(法)이니 시각(始覺)으로 나의 본각(本覺)을 자세히 가려 살핌을 이르는 말이다. 말은 뜻을 드러내는 도구라, 뜻을 얻으면 자연히 말은 필요 없는 것이다. 이와같이 뜻을 얻고 말을 잊은 자체는 사람에게 내보일 수는 없지만 그러나 이치(理致)를 증득(證得)하지 않으면 깨칠 수 없는 것(不了)이다,, 고 하였다.
기심 시천마 불기심 시음마 혹기혹
起心은 是天魔요 不起心은 是陰魔며 或起或
불기 시번뇌마 아정법중
不起는 是煩惱魔어니 我正法中엔
본무여시사
本無如是事니라
※일어나는 마음을 천마라 하고 일지 않음을 음마라 하며 혹 일기도 하고 일지 않기도 하는 것을 번뇌마라 하거니와, 그러나 우리 정법 가운데는 본래 이같은 일이 없다.
※ 해의(解義) ※
사마외도란 본래 그 종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수행하는 이가 수행중에 자칫정념을 매각함을(失念) 틈타, 물결일어나듯 여러갈래 파(派)가 생겨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마의 경계란 어디까지나 꿈속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지라 깨어있는 사람에게는 본래 그 흔적도 없는 것이다.
32
공부 약타성일편즉 종금생 투불득
工夫가 若打成一片則 縱今生에 透不得 이라도
안광낙지시 불위악업 소견
眼光落地時에 不爲惡業의 所牽이라 하리라
※공부가 타성일편을 이룬다면 비록 금생에 사무치지 못하더라도 마지막 눈 감을 때 악업에 끌리지는 않을 것이다.
※ 해의(解義) ※
이것은 공부하는 사람중에 속효심(速效心)에 매달려 퇴굴(退屈)하려는 이들을 각별히 위로하는 말씀이다. 사람이 목숨이 다하여 안광(眼光)이 땅에 떨어질 때에는 한평생 지어온 선악업(善惡業)의 결과가 다 나타나 보이는데 이때를 당해 비록 공부를 사무치지 못했다 하더라도 악업(惡業)에 끌려가지 않게 되는 것은 반야(般若)의 힘이 그만큼 뛰어나기 때문이다.
#33
어법 유친절반조지공 자긍점두자
於法에 有親切返照之功하야 自肯點頭者라
시유어화분
始有語話分하리라
※저 법에 진절히 도리켜 살피는 노력을 쌓아 마침내 스스로 긍정하고 머리를 끄덕일수 있어야 비로소 한마디 이를 분수(자격)가 있으리라.
※ 해의(解義) ※
이것은 논리만을 즐겨 배우려는 이(學語辈)들을 경책하는 것이다. 반조(返照)는 본각(本覺이 자아(自我)요 시각(始覺)은 법(法)이니 시각(始覺)으로 나의 본각(本覺)을 자세히 가려 살핌을 이르는 말이다. 말은 뜻을 드러내는 도구라, 뜻을 얻으면 자연히 말은 필요 없는 것이다. 이와같이 뜻을 얻고 말을 잊은 자체는 사람에게 내보일 수는 없지만 그러나 이치(理致)를 증득(證得)하지 않으면 깨칠 수 없는 것(不了)이다,, 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