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무엇을 해 야
구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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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7 11:01
인간은 무엇을 해 야
인생(人生)의 의의가 무엇이고, 사람이 이 세상에서 할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는 객관적으로 인생을 한번 관찰(觀察)하여 보도록 하자. 이 근본적인 인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이 있는가? 오직 불법(佛法)이요 불법 중에는 참선(參禪)이라야 능히 해답을 얻을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세상에 탄생할 때 고고성을 지르며 땅에 떨어진다. 이 출생(出生)의 시점부터 죽는 시간까지 살아가는 과정을 일러 인생이라고 한다. 그럼 "인생을 어디로부터 왔다가 어디로 향하는가?,, 하고 묻는다면 과연 선듯 대답할 사람이 누구겠는가? 다만 까닭도 없이 왔다가 까닭도없이 간다든지 저절로 왔다가 저절로 간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으니, 이 와중에서 인생은 저절로 결성해지고 당초 어떤 계획에서 연유되는지도 모르고 부부가 맺어지고 함께 흘러가게 되며 인생 사업을 모두 어름어름 해가고 있을 뿐 적어도 자기의 주의대로 성취되는 것이 없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느 서양 철학자가 망망한 인생에 비유해서 한 이야기를 들어 보자. 어느 곳에 산 들이 서로 마주보고 서 있다.산은 몹시 험준할 뿐 아니라 산과 산 사이에는 까마득한 벼랑과 벼랑 밑을 흐르는 깊은 냇물이 흐르고 있어 서로 경계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 강을 건너는 길이라고는 두 산을 연결한 길고 가는 외나무 다리가 하나 걸려 있을 뿐이다. 이 다리를 밟지 않고서는 사람들은 저쪽 산을 밟을 수 없게 되므로 할 수 없이 이 길을 택한다. 그런데 다리에 걸음을 옮겨 딛고서 앞을 보면 안개가 가득 끼여 지척을 분간할 수가 없고 뒤를 돌아다 보면 뒷산은 구름에 가리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다시 아래를 굽어보면 발 아래는 천야 만야 벼랑이요, 벼랑믿에는 시퍼런 냇물이 낼름낼름 굽이쳐 흐른다. 그래도 사람들은 다리를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대 서너 걸음이나 걷다가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사람, 반 정도나 나아가다 떨어지는 사람, 심지어는 거의 저쪽 편에 이르를 즈음해서 떨어지는 사람, 그리고 떨어지기만 하면 행적이 묘연하게 되나. 이것이야말로 우리 인생에 바유한 가장 적절한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불교에서는 인생에 대해서 어디로부터 오고, 오디로 가며, 현재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를 분명히 설명하고 있으니, 마치 한 조각 작은 배를 타고 망망한 대해를 방향도 없이 항해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항로를 잘 찾아서 멀고 험한 바다를 무사히 항해하여 목적하는 바 저쪽 언덕에 이르르게 하는 방법으로 안내하는 것이 불교인 것이다. 인생은 바쁘다. 젊어서부터 늙어 죽는 그날까지 무언지 모르게 항상 바쁘기만 하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바빠야 허느냐 하면 아무도 대답할 말이 없다. 다만 "바쁘지 않을 수가 없다,, 라고 말할 뿐이다. 청년들은 인생을 깊이 생각하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인생은 무한하고 만리 창공에 그들의 전도를 환영하는 광명한 웃음의 여신이 항상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의 힘과 기백이며 무엇이나 거침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년이 넘어지면 녹록한 인생에 대하여 초조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인생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하고 긴장감을 갖기도 한다. 나는 여러분에게 바쁘지 말라는 것을 권하는 것이 아니라 바빠서 얻어지는 결과가 무엇이냐를 찾아보라는 것이다. (계속)
인생(人生)의 의의가 무엇이고, 사람이 이 세상에서 할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는 객관적으로 인생을 한번 관찰(觀察)하여 보도록 하자. 이 근본적인 인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이 있는가? 오직 불법(佛法)이요 불법 중에는 참선(參禪)이라야 능히 해답을 얻을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세상에 탄생할 때 고고성을 지르며 땅에 떨어진다. 이 출생(出生)의 시점부터 죽는 시간까지 살아가는 과정을 일러 인생이라고 한다. 그럼 "인생을 어디로부터 왔다가 어디로 향하는가?,, 하고 묻는다면 과연 선듯 대답할 사람이 누구겠는가? 다만 까닭도 없이 왔다가 까닭도없이 간다든지 저절로 왔다가 저절로 간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으니, 이 와중에서 인생은 저절로 결성해지고 당초 어떤 계획에서 연유되는지도 모르고 부부가 맺어지고 함께 흘러가게 되며 인생 사업을 모두 어름어름 해가고 있을 뿐 적어도 자기의 주의대로 성취되는 것이 없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느 서양 철학자가 망망한 인생에 비유해서 한 이야기를 들어 보자. 어느 곳에 산 들이 서로 마주보고 서 있다.산은 몹시 험준할 뿐 아니라 산과 산 사이에는 까마득한 벼랑과 벼랑 밑을 흐르는 깊은 냇물이 흐르고 있어 서로 경계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 강을 건너는 길이라고는 두 산을 연결한 길고 가는 외나무 다리가 하나 걸려 있을 뿐이다. 이 다리를 밟지 않고서는 사람들은 저쪽 산을 밟을 수 없게 되므로 할 수 없이 이 길을 택한다. 그런데 다리에 걸음을 옮겨 딛고서 앞을 보면 안개가 가득 끼여 지척을 분간할 수가 없고 뒤를 돌아다 보면 뒷산은 구름에 가리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다시 아래를 굽어보면 발 아래는 천야 만야 벼랑이요, 벼랑믿에는 시퍼런 냇물이 낼름낼름 굽이쳐 흐른다. 그래도 사람들은 다리를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대 서너 걸음이나 걷다가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사람, 반 정도나 나아가다 떨어지는 사람, 심지어는 거의 저쪽 편에 이르를 즈음해서 떨어지는 사람, 그리고 떨어지기만 하면 행적이 묘연하게 되나. 이것이야말로 우리 인생에 바유한 가장 적절한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불교에서는 인생에 대해서 어디로부터 오고, 오디로 가며, 현재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를 분명히 설명하고 있으니, 마치 한 조각 작은 배를 타고 망망한 대해를 방향도 없이 항해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항로를 잘 찾아서 멀고 험한 바다를 무사히 항해하여 목적하는 바 저쪽 언덕에 이르르게 하는 방법으로 안내하는 것이 불교인 것이다. 인생은 바쁘다. 젊어서부터 늙어 죽는 그날까지 무언지 모르게 항상 바쁘기만 하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바빠야 허느냐 하면 아무도 대답할 말이 없다. 다만 "바쁘지 않을 수가 없다,, 라고 말할 뿐이다. 청년들은 인생을 깊이 생각하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인생은 무한하고 만리 창공에 그들의 전도를 환영하는 광명한 웃음의 여신이 항상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의 힘과 기백이며 무엇이나 거침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년이 넘어지면 녹록한 인생에 대하여 초조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인생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하고 긴장감을 갖기도 한다. 나는 여러분에게 바쁘지 말라는 것을 권하는 것이 아니라 바빠서 얻어지는 결과가 무엇이냐를 찾아보라는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