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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한 사나이가 죽을 죄를 짓고

구경사 0 52
옛날에 한 사나이가 죽을 죄를 짓고  술취한 코끼리가 코로 사람을 감아 치고 쓰러뜨리고 발로 밟아서 죽이는 사형장인 코끼리 우리 안으로 잡혀 들어가게 되었다. 그 순간에 사나이는 날쎄게 코끼리의 우리를 틈으로 비집고 뛰쳐나와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허허 넓은 광야(曠野)로 달음박질을 하여 달아난다. 이때에 코끼리도 우리를 부숫고  뛰쳐나와 있는 힘을 다하여 뒤 쫓아간다. 코끼리와 사나이는 넓은 광야를 마라톤 경주를 하듯이 경주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은 약하고 코끼리는 기운이 세어서 잘못하면 붙잡히게 될것 같아 도피할 장소를 찾다가 발견치 못한 사나이는 물 마른 옛 우물 속으로 들어가서 얽혀 있는 등칡을 잡고 매달렸다. 옛날에 이 우물 주변에는 인가(人家)가 백여 호가 살고 있으면서 이 우물을 사용했던 것인데 어느 때에 화적(火賊)들이 부락을 휩쓸고 불을 지르고 노락질하여 갔으므로 마을은 없어지고 우물만 남았는데 우물 위 언덕에는 나무가 나고 우물 안에는 등나무가 나서 서로 자라면서 얽히게 되었다. 그래서 등나무가 우물 밖에 있는 나무가지에 걸쳐서 올라간 노등(老藤 = 늙은 등나무)이 되었으므로 사람이 매달려도 끊어지지 아니하였다. 코끼리는 등치가 커서 우묵 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에 밖에서 울부짖고 있을 뿐이다. 사나이는 겨우 숨을 돌리고 우물 안의 사방을 둘러보니 네마리의 독사가 돌구멍에서 머리를 내밀고 혀를 날름거린다. 그런데 또 아래를 내려다보니까 물은 충충한데 독룡(毒龍)이 입을 벌리고 독기를 뿜으면서 사나이가 떨어 지기만 하면 당장 집어삼킬 형세이고 나무 위를 쳐다보니 등나무 가장자리에 흰 쥐와 검은 쥐 두 마리가 서로 번가라가며 나무에 걸린 등나무 덩굴을 갈가먹고 있는것이 아닌가!  그리고 보니 사나이의 목숨은 경각에 있다. 쥐들이 등 덩굴을 다 갈가서 끊어뜨려도 죽고, 독룡의 독기를 마셔도 정신이 나가서 떨어져 죽을 것이고, 네마리 독사 가운데 한마리에 물려도 독기가 몸에 펴져서 죽을 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무슨 물이 이마 위에 뚝뜍 떨어져 입으로  흘러 들어오는 것이였다. 이것은 등나무에 벌집이 있어서 등칡이 흔들리는 바람에 흘러 떨어지는 다섯방울 꿀물 이었다.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 네 방울 다섯 방울이 떨어지는 꿀 방울을 번갈아 빨아먹는 순간적인 재미에 도취되어 사나이는 코끼리도 네 마리 뱀(사사 = 四蛇)도 검은 쥐 흰 쥐(흑서 백서 = 黑鼠 白鼠)도 우물 밑에 있는 독룡(毒龍)도 모두 다 잊어버리고 등칡덩굴에 달려 있을 따름이다. 사나이는 세상 사람에 비유한 것이요, 코끼리는 목숨을 재촉하는 무상(無常)에 비유(譬喩)한 것이며, 매달린 등 덩굴은 우리의 목숨에 비유한 것이요, 네 마리 뱀은 육신(肉身)의 사대인 지(地,) 수(水), 화(火), 풍(風)에 비유한 것이며, 우물은 세계(世界)에 비유한 것이며 독룡(毒龍)은 지옥(地獄)에 비유한 것이요, 굴 방울은 재(財), 색(色), 식(食), 수(睡), 명(名) 등의 오욕락(五欲樂)에 비유한 것이다. 이 비유담(譬喩談)을 보면 얼마나 교묘하고 여실(如實)하게  인생을 그렸는지 모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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