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는 선(禪)과 교(敎)의 특징을
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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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9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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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학자 선이여실언교
故로 學者는 先以如實言敎로
위변불변수연이의 - 시자심지성상
委辨不變隨緣二義 - 是自心之性相이며
돈오점수양문 시자행지시종연후
頓悟漸修兩門이 是自行之始終然後에
방하교의 단장자심 현전일념
放下敎義하고 但將自心에 現前一念하여
참상선지즉 필유소득
叅詳禪旨則 必有所得하리니
소위출신활로
所謂出身活路니라
※그러므로 배우는 이는 먼저 실다운 가르침을 의지해 "변치 않음,,과 "인연을 따르는 ,, 두 뜻이 곧 자심의 성품과 모양이며, 돈오와 점수의 두문이 곧 실제로 수행할 처음과 끝임을 자세히 납득하고 판단한 뒤에 "배우고 익힌,, 교의를 말끔히 놓아 버리고 다만 자기 마음의 현전한 일념으로 선(禪)의 자취를 자세히 참구한다면 반드시 얻는바가 있으리니 이른바 출신하여 살 길이다.
※ (해의(解義) ※
지금까지는 선(禪)과 교(敎)의 특징을 서로 비교하며 설명해 왔다. 이제 부터는 오로지 선(禪)을 결단하여 올바른 길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뛰어난 상근기(上根機)의 사람이라면 굳이 이러한 과정에 매이지 않아도 되겠지만 말법세상(末法世上)의 배우는사람(學者)은 법(法)의 눈(目)이 분명치 못해서 헤매기만 할 뿐, 정법(正法)을 가려 내기가 어렵다. 이것을 앞 성현(先聖)들께서 걱정하시어 자세히 분석해 보이는 것이니 학자(學者)들은 부디 정신차려 올바른 눈으로 다시금 잠심완미(潛心琓味)할 것이다. 교리(敎理)에 의지한 관법수행(觀法修行)은 모든 성인(聖人)들의 당연한 법칙이겠지만 아득한 벼랑에서 손을 놓아 버릴 수 있는(懸厓摋手) 용기는 하늘위로 솟아 오르고도 남을 대장부(大丈夫)의 기개를 가진 이(衛天丈夫)만이 가능할 것이다. 불변(不變)은 심진여(心眞如)요 수연(隨緣)은 심생멸(心生滅)이며 성(性)은 본체(本體)요 상(相)은 작용(作用)이다. 또 돈오(頓悟)는 불변(不變)이요 점수(漸修)는 수연(隨緣)이며 시(始)는 인(因)이요 종(終)은 과(果)를 말한다.
고 학자 선이여실언교
故로 學者는 先以如實言敎로
위변불변수연이의 - 시자심지성상
委辨不變隨緣二義 - 是自心之性相이며
돈오점수양문 시자행지시종연후
頓悟漸修兩門이 是自行之始終然後에
방하교의 단장자심 현전일념
放下敎義하고 但將自心에 現前一念하여
참상선지즉 필유소득
叅詳禪旨則 必有所得하리니
소위출신활로
所謂出身活路니라
※그러므로 배우는 이는 먼저 실다운 가르침을 의지해 "변치 않음,,과 "인연을 따르는 ,, 두 뜻이 곧 자심의 성품과 모양이며, 돈오와 점수의 두문이 곧 실제로 수행할 처음과 끝임을 자세히 납득하고 판단한 뒤에 "배우고 익힌,, 교의를 말끔히 놓아 버리고 다만 자기 마음의 현전한 일념으로 선(禪)의 자취를 자세히 참구한다면 반드시 얻는바가 있으리니 이른바 출신하여 살 길이다.
※ (해의(解義) ※
지금까지는 선(禪)과 교(敎)의 특징을 서로 비교하며 설명해 왔다. 이제 부터는 오로지 선(禪)을 결단하여 올바른 길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뛰어난 상근기(上根機)의 사람이라면 굳이 이러한 과정에 매이지 않아도 되겠지만 말법세상(末法世上)의 배우는사람(學者)은 법(法)의 눈(目)이 분명치 못해서 헤매기만 할 뿐, 정법(正法)을 가려 내기가 어렵다. 이것을 앞 성현(先聖)들께서 걱정하시어 자세히 분석해 보이는 것이니 학자(學者)들은 부디 정신차려 올바른 눈으로 다시금 잠심완미(潛心琓味)할 것이다. 교리(敎理)에 의지한 관법수행(觀法修行)은 모든 성인(聖人)들의 당연한 법칙이겠지만 아득한 벼랑에서 손을 놓아 버릴 수 있는(懸厓摋手) 용기는 하늘위로 솟아 오르고도 남을 대장부(大丈夫)의 기개를 가진 이(衛天丈夫)만이 가능할 것이다. 불변(不變)은 심진여(心眞如)요 수연(隨緣)은 심생멸(心生滅)이며 성(性)은 본체(本體)요 상(相)은 작용(作用)이다. 또 돈오(頓悟)는 불변(不變)이요 점수(漸修)는 수연(隨緣)이며 시(始)는 인(因)이요 종(終)은 과(果)를 말한다.